▲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사진=위키백과 |
이준익 감독이 일제강점기 청년 윤동주와 독립운동가 송몽규의 이야기를 담은 영화 ‘동주’에 이어 적의 심장부에서 조국 독립을 위해 몸을 불살랐던 아나키스트 ‘박열’ 영화가 6월 말 개봉을 확정했다.
배우 이제훈이 주연을 맡은 영화 ‘박열’의 1차 포스터가 파격적인 비주얼로 시선을 끌면서 독립운동가 ‘박열’에 대한 관심도 증폭되고 있다.
박열은 경성고등학교 재학 중 1919년 3.1 운동에 가담했다가 퇴학을 당한 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조선 최초의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로회’와 1923년 연인인 가네코 후미코 등과 함께 비밀결사 ‘불령사’를 조직해 항일활동을 펼쳤다.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의 사랑은 유명한데. 가네코는 1922년 일본 유학생들이 펴낸 ‘조선청년’이라는 잡지에 박열이 기고한 ‘개새끼’라는 시를 읽고 숙명적인 사랑에 빠지게 됐으며, 이후 죽는 날까지 박열과 함께 했다.
▲ 영화 '박열' 포스터/사진=연합 |
영화 ‘박열’의 포스터에도 “나는 조선의 개새끼로소이다”로 풍운아의 면모를 보여준다.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하늘을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것없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줄기를 뿜어대는/ 나는 개새끼로소이다”
詩 ‘개새끼’는 적과의 사랑에 빠진 한 여인을 기구한 운명에 빠지게 했다.
가네코는 박열과 함께 일본 천황 암살에 가담했다가 붙잡혀 사형이 선고됐다가 무기징역으로 감형이 되기도 했다. 감옥에서 결혼식을 올려 ‘옥중부부’가 됐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네코는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됐다.
박열은 22년 2개월을 복역하고 해방후인 1945년 10월 27일 미군에 의해 풀려났다. 독립운동가 중 최장기 복역이었다. 광복 이후 1949년 고국으로 돌아온 그는 6.25때 납북돼 1974년 북에서 눈을 감았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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