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습기 살균제의 유해성 여부를 사전에 알고 있었음에도 이를 제조·판매한 업체와 해당 임원에 대해 검찰은 업무상 과실치사·상 혐의로 재판에 회부해 이들은 준엄한 법의 심판을 받게 됐지만, 이 사건의 피해자들이 적절한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는지의 여부가 문제였다.
현행 민법은 손해배상의 방법으로 금전배상주의를 원칙으로 하고 있고, 손해배상은 손해나 권리 침해를 화폐 가치로 따져 손해배상액을 산정하는데, 배상액이 피해액을 상회하지 않기에 사실상 실손해액만 배상하면 되는 상황으로, 과연 현재의 손해배상 제도가 피해자에게 충분한 피해배상이 되는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 것이다.
이러한 문제 의식과 함께 제조사가 고의를 가지고 소비자의 재산 또는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그 손해액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우리나라에도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를 도입해야 된다는 논의가 보다 구체화됐다.
‘징벌적 손해배상(punitive damages)’이란 기업이 불법행위를 통해 영리적 이익을 얻은 경우 이익보다 훨씬 더 큰 금액을 손해배상액이나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제도다. 끼친 손해에 상응하는 액수만을 보상하게 하는 전보적 손해배상(compensatory damages)만으로는 예방적 효과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고액의 배상을 치르게 함으로써 장래에 유사한 불법행위의 재발을 억제하자는데 그 목적이 있다.
이 제도의 도입을 찬성하는 모임에서는 무고한 사망자, 유족들을 위로하려면 이러한 사태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할 필요성이 시급하고, 기업은 이윤 창출보다 국민의 생명과 신체의 안전보호에 먼저 관심을 가져야 하며, ‘징벌적 손해배상’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고의 또는 악의를 가지고 재산 또는 신체상 피해를 입힌 것으로 가해자의 비도덕적·반사회적 행위에 대해 일반적 손해배상을 넘어 선 책임을 지우는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대국민 서명운동을 벌이고 각종 토론회에 참석해 도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노력 끝에 지난달 30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제조물 책임법’ 개정안이 통과됐는데, 제조업자가 제조물의 결함을 알면서도 그 결함에 대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아니한 결과로 소비자의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힌 경우, 최대 3배까지 손해배상책임을 부과하는 내용이었다. 가맹본부의 허위·과장 정보제공, 부당한 거래거절 등으로 가맹점주가 손해를 입은 경우 가맹본부가 그 손해의 3배 범위 내에서 배상책임을 지는 ‘가맹사업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 개정안도 같은 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사실‘징벌적 손해배상’의 도입에 대해서는 찬성하는 입장만 있는 것이 아닌데, 현행 법체계와 맞지 않고, 헌법상 과잉금지, 이중처벌금지 등에 위배돼 위헌 소지가 있으며, 현행 민법의 손해배상 규정은 어느 나라보다도 유연하다는 장점이 있어 위자료 산정과 관련한 세부적 요소를 밝히고 기준표를 마련해 배상하는 방법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는 등의 이유로 반대하는 의견도 일부 존재한다.
이번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으로 배출가스를 조작해 문제가 된 폭스바겐과 같은 다국적 기업의 불법적인 횡포를 방지할 수 있게 됐고, 기업 스스로가 더욱 고도의 주의를 기울여 품질유지를 하게 되고 산업 전체의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됐다고 본다.
다만, 이번에 통과된 개정안은 모든 불법행위에 의한 손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아니라 제조물의 결함에 의한 징벌적 손해배상만을 인정한 것인바, 향후 이 제도의 시행 결과에 따른 피드백을 거친 후 환경피해 등의 다른 분야로 확대돼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조성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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