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애의 미술읽기] 율리우스 2세와 미켈란젤로의 세기적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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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애의 미술읽기] 율리우스 2세와 미켈란젤로의 세기적 만남

4. 후원자와 예술가(4)

  • 승인 2017-04-21 00:01
  • 정경애 보다아트센터관장정경애 보다아트센터관장
▲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1537~41년, Fresco, 1370 x 1220 cm, Sistina 성당, 바티칸
▲ 미켈란젤로 <최후의 심판> 1537~41년, Fresco, 1370 x 1220 cm, Sistina 성당, 바티칸


르네상스의 예술후원자로는 초기는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 전성기는 로마의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으뜸이다. 율리우스의 재임 시기(1503∼1513)는 르네상스의 전성기와 정확히 일치한다. 미켈란젤로와 라파엘로 그리고 건축가 브라만테를 후원하고, 성 베드로 대성당의 재건을 추진했으며, 재위 4년째에는 라오콘을 사들여 교황들이 본격적으로 예술품 수집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들의 수집품은 바티칸미술관 소장품이 되어, 지금도 바티칸미술관의 위상을 높혀 주고 있다.

율리우스 2세는 즉위하자마자 교회 건축과 미술의 중흥을 위해 각처의 예술가들을 로마로 불러 들였다. 이때 유독 눈여겨 본 예술가가 미켈란젤로였는데, 약관 23세에 <피에타> 상을 만들고 불과 수년 후에는 <다윗> 상을 만들어 유럽 최고의 조각가가 된 미켈란젤로 역시 자신을 탐내는 여러 손길을 마다하고 로마와 율리우스 2세를 선택했다. 이 둘의 만남은 로마를 르네상스의 메카로 만들었으니, 그야말로 역사를 바꾼 만남이라 할 수 있다.

피렌체에서 로마로 입성한 미켈란젤로에게는 주어진 첫 번째 업무는 율리우스 2세의 묘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집트의 파라오가 피라미드를 건설한 것처럼 교황들도 즉위하면 가장 먼저 자신들이 묻힐 화려한 무덤을 설계했다. 율리우스 2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 시대는 상업의 발달로 신흥 부유층이 형성되면서 그들이 향유하는 사치와 문화는 고스란히 교황청으로 흘러들어와 교황의 사치와 문화수준 또한 대단했다. 그런 영향 탓인지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와 의기투합하여 누구보다도 화려하고 거대한 묘를 만들고자했다.

그러나 40년 지나서야 완성된 이 묘는 원래 계획했던 것보다 훨씬 축소되어 성 베드로 대성당이 아닌 산 피에트로 인 빈콜리 성당에 설치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묘의 주인공인 율리우스 2세의 시신조차 없는 그야말로 초라한 석조물로 전락하고 말았다.

비록 영묘는 실패했지만 식스투스 4세의 조카이며 원래 교회 안에서 영향력이 컸던 율리우스는 대신 성 베드로 대성전 신축을 지시했다.

프랑스 출신의 교황이 탄생하자 프랑스의 압력으로 교황청을 프랑스 남부의 요새도시 아비뇽으로 옮겨야했던 아비뇽 유수(1309~1377)와 그 이후에 일어난 교회의 대분열(1378~1417)로 15세기까지만 해도 로마는 폐허나 다름이 없었다. 로마를 버리고 아비뇽에서 100여년을 지내다 보니 베드로 성당 또한 쥐가 득실거릴 정도로 황폐했다.

교황청이 바티칸으로 돌아오면서 교황들은 유령도시나 다름없던 로마의 재건에 힘을 쏟았다. 하지만 성 베드로 대성전 신축을 지시하며 머릿돌을 놓았던 교황은 율리우스 2세였다.

신축에 필요한 엄청난 자금으로 희년 면죄를 선포(1506)하고, 면죄부를 판매(후임자인 레오 10세)하여‘돈궤에 금전이 떨어지는 소리가 나자마자 연옥에 있는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오명과 종교개혁의 도화선을 만들었지만, 바티칸의 숙원사업의 해결사였다.

어느 날 율리우스 2세는 자신의 영묘 작업에 전념하던 미켈란젤로를 불렀다. 그리고는 영묘 작업을 중단하고 시스티나 성당의 비워있는 천장에 그림을 그리라고 했다.

‘그림은 게으름뱅이에게나 어울리는 예술’이라고 비난했을 뿐만 아니라 프레스코화는 아예 시도도 안 해 봤던 미켈란젤로에게는 너무도 내키지 않는 주문이었다. 더구나 피렌체에서 건너온 젊고 잘 생긴 라파엘을 총애하여 라파엘에게 자신의 집무실은 물론 바티칸 내부의 장식작업을 이미 맡긴 터라 불쾌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마지못해 받아들인 이 주문에 미켈란젤로는 4년(1508~12)에 걸쳐 1천 제곱미터에 달하는 공간에 조수도 없이 혼자서 391명의 인물로 가득 채운 천장화로 응답했다. <시스티나 천장화>는 30년이 지나 서쪽 벽면에 그린 <최후의 심판>과 더불어 미켈란젤로를 회화를 통해 전성기 르네상스의 최고 주인공으로 만든 일등공신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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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켈란젤로는 인간중심의 사고를 가진 진정한 인무주의자였다. 그의 모든 관심은 오로지 인간의 육체 그 자체였다.

<시스티나 천장화>는 창세기와 구약의 사건들 그리고 예수 출현을 예고하는 예언자와 무녀들에게 영묘를 위해 구상했던 우람하고 장대한 인체의 조형미를 그대로 적용시켰다. 풍경도 장식물도 없이 오로지 상상력으로 만들어낸 인간 만으로 온 천장을 가득 채운 것이다. 그가 만들어낸 내면과 감정을 분출하는 듯한 인체의 형상은 르네상스는 물론 바로크의 화가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미켈란젤로의 위대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자기중심적이고 고집불통이고 불같은 성격의 소유자였음도 잘 알고 있다. 그러니 미켈란젤로 못지않은 본인의 성질과 권위를 억누르고 미켈란젤로에게 최고의 예술가라는 경칭까지 써 가며 그를 다독거린 율리우스 2세의 인내심이 없었다면 거기에 예술가의 천재성을 알아보는 안목 또한 없었다면 과연 이 시기를 르네상스의 전성기로 만들 수 있었을까?

정경애 보다아트센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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