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애 선문대학교 교수 |
겨우 열세 살인 이 여자아이가 텔레비전을 통해서나 본 언니, 오빠들과 선생님에게 숙연한 마음이 들어 생일의 기쁨을 만끽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는 지인의 얘기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아마도 이 아이는 평생 동안 자신의 생일을 세월호 참사와 함께 기억해야 하는 운명을 안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4월 16일. 어떤 이에게는 탄생의 기쁨을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난파의 참혹함을 기억해야 하는 날이기도 하다. 인재(人災)였던 세월호 참사는 우리 국민 모두의 비통함을 마음에 묻어야하는 일이지만, 다시는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가슴에 깊이 새겨두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얼마 전 세월호가 인양되는 모습을 숨죽여 지켜보며 나 자신을 돌이켜 보았다. 삼년이란 긴 세월을 그저 마음으로만 지지해온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 부모들과 가족들만큼은 아니겠지만, 희생된 그들을 위해 내 자신이 할 수 있는 감정과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고 생각하였다. 문득 나의 감정과 에너지를 쏟은 그 과정들이 가져온 결과가 무엇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서적, 감정적 지지가 초기에는 그 가족들에게 큰 위안이 되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런 대안 없이 그저 흘려온 우리 국민들의 눈물이 우리의 사회에 그다지 큰 도움이 되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괴테는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그 실수가 이미 전에 범했던 실수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며, 훌륭한 사람이 되려면 나이가 들어야 한다고 했다. 어쩌면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은 연륜과 다양한 경험에 의한 삶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괴테의 지적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크고 작은 사회적 실수는 일어날 수 있다. 다만, 그러한 반복된 실수에서 체득하게 되는 지혜를 결코 헛되이 흘려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의식은 비단 나 자신만이 떠올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국민 스스로가 이런 그릇된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얼마나 노력하였는가? 혹여 실수를 했다는 것 자체에만 집착해 그 실수의 원인과 분석을 소홀히 한 탓에 결국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는 않았는가?
역사라는 거울에는 세 개의 모습이 비쳐진다. 나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모습이다. 영국의 역사학자 카(E. H. Carr)는 자신의 저서인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과거, 현재와 미래는 시간의 연속성 즉, 역사성을 가지고 있음을 이해해야만 역사가 주는 그 의미를 비로소 인지할 수 있게 된다. 현재에는 과거가 녹아들어 있고, 미래는 현재를 반영한다. 따라서 과거를 잘 살펴보면 현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고,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변화추이를 잘 살피면 미래를 어느 정도는 예측할 수 있게 된다.
사마천의 『사기(事記)』에 담긴 지고자경(志古自鏡)이란 말은 역사라는 거울 앞에서 자신을 비추어 더욱 환하게 빛나게 해야 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역사 속에 묻힌 과오를 통해 더 이상 실수를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의미이다. 실수도 하나의 경험이 될 수 있다면, 그 경험을 헛되이 하지 않도록 하는 노력들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들이 부단히 이어질 때 지혜로 승화될 수 있을 것이고, 그것을 기반으로 미래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다.
래퍼 치타와 장성환이 부른 ‘옐로우 오션’의 가사가 떠오른다. “그땐 눈 감고 눈 뜰때 숨 쉬는 것도 미안해서/ 난 입을 틀어막고 두 손 모아 기도하길 반복했어/ 단언코 진실도 있었지 인양해야 할 건/ 진실은 이제 조금씩 떠오르고 있어/ 규명이 빠진 진상 그들은 의지가 없고/ 구경하고 다 조작 오보 연기였고/ 그 뒤로 많은 날이 지났지만 오늘도 기억해”
이미 많은 날이 지났고, 앞으로 다가올 많은 날들이 있겠지만, 2015년 4월 16일은 역사 속에 꼭 기억되어 그날과 같은 참사가 다시는 이 땅에 일어나지 않기를 기도한다.
정영애 선문대학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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