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선생님은 꿈이 뭐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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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선생님은 꿈이 뭐예요?

  • 승인 2017-04-16 09:47
  • 신문게재 2017-04-18 22면
  • 신혜선 금산초등학교 교사신혜선 금산초등학교 교사
▲ 신혜선 금산초등학교 교사
▲ 신혜선 금산초등학교 교사
“저는 의사가 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부모님이 아프실 때 치료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애견샵이 되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동물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쉬는 시간에 발표할 내용을 열심히 소리 내며 연습하던 지수. 막상 수업시간이 되어 친구들 앞에 서서 말을 하려니 떨렸나보다. 애견사가 아닌 애견샵이 되고 싶단다. 지수의 말을 들으며 나는 혼자 ‘큭큭’ 거리며 웃는다. 앉아서 듣고 있던 친구들은 지수의 말이 어디가 틀렸는지 전혀 모르는 눈치다. 여전히 진지하게 듣고 있다. 오히려 그 뒤의 아이들마저 지수의 말을 따라 ‘애겹샵이 되고 싶습니다’ 를 이어나간다.

혼자 실컷 웃으면서 우리 반 아이들의 꿈 발표를 다 듣고 수업을 마쳤다. 쉬는 시간이 되니 토끼 같은 아이들이 내 자리를 비집고 모여 들어 말을 건다. 다음 시간에 뭐 할 거예요? 이거 뭐예요? 저 내일 할머니 생신이예요...왁자지껄한 가운데, “선생님, 선생님은 꿈이 뭐예요?”

순간 따뜻한 봄바람에 춤을 추듯 여유롭고 평온하던 내 마음이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둘러선 아이들도 그 말을 들었는지 나의 꿈이 무엇인지에 눈동자를 모으며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내 꿈이 뭐지? 내가 이 교사 말고 다른 것을 꿈꿨던 것이 있었나? 내가 꿈을 꿀 수 있는 나이인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이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지만, 머릿속에선 빛의 속도로 내가 할 대답을 찾아 다녔다.

‘뭐라도 하나 지어서 말하자’했지만 도무지 적절한 말이 잡히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알고 있고,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우리 선생님이 꿈이 없다고 말하면 아이들이 매우 실망할 것이다. 멋지게 꿈을 그리고, 색칠하고, 쉬는 시간에 소리 내어 연습해서 친구들과 선생님 앞에서 꿈을 발표했는데, 우리 선생님이 그런 멋지고 즐거운 꿈이 없다고 하면 매우 불쌍하게 생각할 것이다.

‘선생님은 꿈이 없어’ 농담처럼 가볍게 말해버릴까. 그러기엔 분위기가 너무 진지하다.

“선생님 꿈이 뭐냐구?”

“네!”

아이들은 대답 듣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나는 대답하기를 포기했다. 말없이 컴퓨터로 몸을 돌리고 모니터를 바라보며 공문서를 열기 시작했다. 그러자 아이들도 말없이 자기자리로 돌아갔다.

여행가, 기자, 영부인, 수녀님, 선생님... 이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우리반 아이들처럼 나도 되고 싶은 것이 많았다. 그 중에 선생님이라는 한 가지 꿈을 이루고 나니 다른 일은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나의 아름다운 꿈들이 모두 사라져버리고 꿈이 없는, 정말 불쌍한 사람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럼에도 아이들에겐 큰 꿈을 꾸라고...

아이들과 함께 선생님도 꿈을 꿔야 한다. 잠을 잘 때 마다 새 꿈을 꾸는 아이들처럼, 선생님도 매일매일 새 꿈을 꾸고 아이들과 함께 꿈을 이야기해야 한다. 크고 멋있는 꿈을 꾸고, 자유롭게 그리고, 알록달록 색칠해 나가야 한다.

점심시간, 첼로를 꺼내 다리에 끼고, 조심스럽게 활을 켜기 시작했다. 시작한지 1년 밖에 안 되는 초보지만 사람들 귀에 익숙한 클래식 몇 곡은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이다. 아이들이 하나, 둘 모여들자 “선생님, 잘 못해. 창피하니까 저기 가서 놀아”라고 했다.

“선생님, 첼로 할 줄 아세요? 얼른 해 보세요.”

아이들 성화에 못 이기는 척, 한 곡을 연주하니, 박수를 쳐 준다.

“선생님, 못하신다면서 정말 잘 하시네요. 멋있어요.”

초보라서 부끄러워 남들 앞에서는 한 번도 연주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아이들 앞에 용기를 내 본 것이었다. 아이들의 칭찬을 받으니 신이 난다. 첼로 배우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을 바라보며, 나를 믿어주고, 좋아해주는 이 아이들을 조금이라도 실망시키지 말자고 다짐해 본다.

“얘들아, 선생님은 멋있는 공연장에서 첼로 연주를 하는 것이 꿈이야. ‘제발 여기 와서 연주 좀 해 주세요’ 이런 부탁받는 연주가가 되고 싶어.”

나는 자신 있게 나의 꿈을 이야기했다. 아이들은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손바닥으로 책상을 치고, 입을 모아서 외쳤다.

“앵콜, 앵콜, 한 번 더, 한 번 더.”

아름다운 첼로 선율과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여 우리 반은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고 배부른 점심시간을 보냈다.

신혜선 금산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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