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산 수당기념관에 전시되어있는 문구. 수당기념관은 수당 이남규 선생이 실천한 호국의 고귀한 정신을 널리 알리고 계승하기 위해 건립됐다. 수당 이남규 선생은 1906년 홍주의병에서 선봉장으로 활약하다 1907년 아들 이충구와 함께 충남 아산 평촌에서 순국했다. |
한민족은 원래 집단주의를 추구하는 민족이다. 수많은 외침에도 불구하고 항상 꿋꿋하고 절대로 굽히지 않는 당당함을 지닌 것도 관계를 소중히 여기는 민족성과 집단주의를 기반으로 하는 철저한 공동체 의식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지금도 ‘나’라는 말보다 ‘우리’라는 말을 애용한다. 심지어 내 아들과 딸도 우리 아들과 딸이라고 한다. 내 씨로 태어났지만 한민족으로 태어난 이상 자타 구별 없이 똑같이 한민족 공동체의 한 구성원이라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관계를 중시하는 불교를 국교로 삼아 천년이상을 살아왔기 때문에 불교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았다고 할 순 없지만 우리 모두 단군 할아버지에게서 태어난 천손민족이라는 자부심과 단일민족이라는 긍지가 더 크게 작용했다.
우리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는 잡아함경을 신봉하고, 타인의 고통이 곧 나의 고통이라 여기며 서로 돕고 의지했다.
우리 민족은 환인, 환웅의 자손이며 배달국의 후예이다. 대한민국의 韓도 桓(환)에서 비롯되었으며 환은 천지광명을 뜻한다.
그러므로 외세는 광명사상으로 강력히 결집한 우리 민족을 군사력만으로는 꺾을 수 없다고 여겨 분열책동을 가장 큰 무기로 삼았다.
자칭 중화(中華)라 하며 동아시아의 패권을 거머쥐려고 했던 수나라가 고구려에게 두 번이나 패해 결국 멸망했다. 수나라를 딛고 일어선 당나라도 한 번 패한 후 힘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음을 인식하고 오랜 고민 끝에 민족분열책동에 들어갔다.
당과의 화친을 주장한 영류왕과 그 일파를 일시에 제거한 연개소문의 정변을 구실로 은밀히 분열을 부추겼다. 연개소문이 죽자 자녀간의 권력다툼에 끼어들어 첫째 아들 연 남생을 꼬여 당으로 망명하게 만들었다. 대막리지가 된 연 남산의 군사력을 약화시키려고 연개소문 가문을 패역무도한 사람으로 모는 이간질로 마침내 고구려를 무너트렸다.
대한민국도 해방 후 7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일제가 심어놓은 분열정책에 휘둘리고 있다. 마지막 조선 총독 아베 노부유키의 말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우리 일본은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며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고 했다.
민족의 혼이라고 하는 역사관을 보면 참담함을 넘어 반역행위에 가깝다. 일본은 ‘일본서기’를 자국의 실리를 위해 마치 소설 쓰듯 편집하고, 단군조선과 고구려, 백제의 도움을 부정하며 심지어 임나일본부설을 주장하는데 우리는 명백히 존재한 역사의 진위를 놓고 서로 물고 뜯는다.
중국의 사서에도 명확히 기록된 한사군 중국설을 부정하고 일제가 조작한 한반도설을 신봉한다.
사마천의 사기에 의하면 패수는 북에서 남으로 흐른다고 되어 있다. 그런데 동에서 서로 흐르는 대동강을 패수로 해석하는 관변사학과 민족사학의 싸움이 지금도 치열하다.
비록 지난 해 11월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 이덕일 소장에게 고등법원이 무죄를 선고했지만 대한민국에서 이런 사건이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치욕스럽다.
이덕일 소장이 ‘임나일본부설은 허구인가’라는 저서에 대해 ‘우리안의 식민사관’에서 임나일본부설 주장과 일제식민사학자 쓰에마스 야스카즈의 주장을 비판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가 저자인 전 고려대학교 교수 김현구에게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했다.
강하고 올곧은 한민족을 침탈하고 지배하기 위해 심어놓은 외세의 분열책동을 벗어나지 못하면 우리 민족의 멸망은 그리 멀지 않다. 뿌리문화를 되찾아 관계를 회복하고 천손사상과 다물정신(고구려가 단군조선의 강역을 되찾자는 것)을 회복하여 집단의식이 강한 한민족의 정체성을 되찾는 것이 시급하다. 온 국민이 인(仁)과 의(義)를 바탕으로 절개와 지조가 남다른 선비정신을 되새겨 실천한다면 금방 어지러운 정국을 수습하고 통일대국으로 우뚝 설 수 있다.
불의가 법이 될 때 저항은 의무가 된다. ‘사가살 불가욕(士可殺 不可辱)’을 가슴에 담아두고 살아야한다. ‘선비는 죽일 수 있지만 욕보일 수는 없다’는 의미이지만, 곰곰이 되새겨보면 선비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고 과감하게 비리를 지적하고 징치하는 것에 머뭇거리지 말라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아직도 외세의 분열책에 속아 선비다운 선비가 보이지 않고, 민족의 정체성마저 사라져가고 있다. 우리나라는 많은 종교가 들어와 있지만 종교분쟁이 없고 이념분쟁이 심한 유일한 나라이다.
박근혜가 역사상 최초로 탄핵 당하는 치욕을 겪은 것은 본인의 어리석음이라기보다는 휘하에 간언을 머뭇거리지 않는 선비정신이 깃든 참모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맹목적 충성은 결코 충성이 아니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식의 긍정주의의 부추김도 사회정화를 방해하는 가장 무서운 독이다. 불의에 침묵하며 주어진 현실에 순응하라는 사람들이 공동체를 타락시키는 주범이다.
선비란 모름지기 죽음을 무릅쓰고 부정에 맞서는 것이 당연지사인데 대한민국에선 무서워 작은 비난도 못하고 하나같이 절절맨다. 모든 국민이 사가살 불가욕을 담은 선비정신을 회복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혼란은 절대로 멈추지 않고 계속될 것이다.
이완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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