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시대]어르신 문해교육의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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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시대]어르신 문해교육의 현장

  • 승인 2017-04-12 16:27
  • 권영국(서구자유총연맹 부설 자유평생학교 교장)권영국(서구자유총연맹 부설 자유평생학교 교장)
▲ 권영국(서구자유총연맹 부설 자유평생학교 교장)
▲ 권영국(서구자유총연맹 부설 자유평생학교 교장)
대전시 서구 용문동에는 11년째 70,80세 되신 어르신들의 문해교육을 위한 서구자유총연맹 부설 자유평생학교가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하루 2시간씩 20여분의 어르신이 한글을 해득하기 위해서 나오고 있다. 허리가 꾸부정하고 걷기조차 힘겨운 백발 어르신들이 여생이 얼마 남지도 않았는데 무얼 배우겠다고 지팡이를 짚고 뒤뚱뒤뚱 오리걸음으로 어려운 발걸음을 매일 하실까? 더욱 놀라운 사실은 대전 같은 대도시에 살면서 학교라곤 문전에도 가 보지 못하고 연필 한번 잡아보지 못한 어르신들이 상당수 계시다는 것이다.

글자를 알아야 죽어서 지옥이라도 찾아갈 수 있다는 농담을 하시면서 어린 손자가 동화책을 들이밀면서,“할머니 이게 무슨 글자야?” 하고 물을 때는 머리통을 한 대 쥐어박으면서 머리채를 쥐어뜯으며 울고 싶다는 것이다. 유치원에 다니는 어린 손자도 동화책을 읽고 컴퓨터에 앉아 별별 게임을 다 하는데 늙은 할머니는 우리나라 글자인 한글조차 모르는 까막눈 신세가 되어 이제서야 공부하러 간다는 내색도 못하고 이웃집에 마실간다거나 시장에 다녀온다고 핑계대고 서구자유총연맹 부설 자유평생학교로 한달음에 달려 배우러 오신다는 것이다.

일제시대부터 광복을 거쳐 오면서 지독히도 가난했던 어린 시절, 무슨 복이라고 자식들은 줄줄이 태어나 대가족을 이루니 식솔들 땟거리가 걱정인데 아들도 아닌 딸자식을 학교까지 보낸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어려서부터 부엌데기로, 농사꾼으로 내몰려 막노동 행세를 하다 보니 아들들만 학교 보내는 것이 부러워할 사이도 없었다. 은행에 가서 자식들이 통장에 넣어준 용돈을 찾으려해도 출금 전표 한 글자를 못 쓰니 남한테 부탁을 하는 것도 한 두 번이지, 에라, 모르겠다, 이참에 무료로 한글을 가르쳐준다니 한번 배워보자 해서 와 보니 왜 내가 진즉에 이런 천당을 몰랐더냐? 나이가 비슷한 늙은이들이 동병상련의 처지에서 모였으니 연필 잡는 것부터 한글 자음, 모음 24자의 필순지도까지 철저히 가르쳐 주니 이참에 한글과 수학을 완전히 깨우쳐야 한다는 마음뿐이었다.

시력이 약하고 손가락이 떨려 글씨는 삐뚤빼뚤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씩 써 내려가는 그 모습은 성스럽고 아름답기까지 했다. “내가 아들로 태어났어 봐, 공부를 했으면 대통령은 못했을까 봐.” “딸로 태어나 이렇게 무식쟁이로 만든 게 누군데” 하며 부모님을 원망할 법도 한데 “딸로 태어난 게 죄지 누구를 원망하겠어” 하면서 스스로를 위로하는 거룩한 어르신들이다.

한글과 수학을 어느 정도 익힌 어르신들이 은행 전표 쓰는 법을 2주일 정도 익힌 뒤에 혼자 가기 부끄러우니 셋 넷 어르신들이 함께 은행에 가서 손수 전표를 기록하여 은행창구에서 돈을 찾아보라고 강사들이 권유하였다. 난생 처음 내 손으로 손수 출금전표를 써서 돈을 찾았다고 하시면서 한글과 수학을 배운 보람을 찾았다고 어린애같이 기뻐하였다.

2016년 12월말 현재까지 총 189명의 어르신들이 수료하셨는데, 수료하시고 댁으로 가신 어르신들의 추수지도가 필요하다. 기억력이 급격히 떨어지는 연세이다 보니 댁에 가셔서 노인 부부간 또는 손자손녀 가사 돌보랴, 신체허약 질병 등 노환으로 병원과 약국 등을 오가랴, 복습과 자습을 자꾸 해서 배운 것을 더 넓혀야 하는데 아는 것도 잊어버릴 형편이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권영국(서구자유총연맹 부설 자유평생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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