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
건설 일용직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장애를 지닌 아들을 위해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다가 탈락한 후 ‘아들이 나 때문에 못 받는 게 있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폐결핵을 앓던 할머니는 부양 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수급자에서 탈락했고, 치료도 받지 못한 채 병원과 보건소를 8시간 동안 오가다 지하철역에서 객사했다.
경남 남해에 있는 노인요양시설에서 생활하던 70대 노인이 부양 의무자 기준에 걸려 수급탈락통보를 받은 후 자살하기도 했고, 실제로 부양하지 않는 사위 때문에 수급자에서 탈락한 할머니가 ‘법도 사람이 만드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느냐’는 유서를 남기고 자살했으며, 서울 송파구의 반지하방에서 거주하던 세 모녀는 “죄송하다”는 편지를 남기고 자살했다.
2014년 2월 송파 세 모녀의 가슴 아픈 자살 이후 정부는 소위 송파 세 모녀 예방법이라며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개정했지만, 지난겨울에도 40대 남성이 실직 후 5개월간 밀린 월세를 내지 못하고 집을 비우기로 한 날 끝내 자살하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분들은 최선을 다해 삶을 꾸려왔음에도 빈곤에 빠져들었기에 국가의 도움이 필요했지만, 그들에게 도움을 주어야 할 국가가 지원과 책임을 회피했기 때문에 죽음으로 내몰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타난 일이 아니고 정부가 미처 몰라서 생긴 일이 아니라는 게 더 문제다. 정부가 알면서도 방치한 사각지대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적용하는 부양의무자 기준이나 근로능력 기준 등으로 인해 마지막 보루인 긴급복지지원에서도, 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도 배제되는 국민이 100만명이 넘는다.
정부가 부양의무가 기준을 엄격하게 적용하는 이유를 재정 절감 이외의 다른 이유를 찾기 어렵다. 정부는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주장하지만, 실제는 정부의 책임 회피이며 정부의 도덕적 해이다.
복지 혜택을 받으려는 수급 신청자에게 “얼마나 비참하게 가난한 지, 그나마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는 사실을 ‘증명’” 하라고 강제하고, 담당 공무원에게 “먼지 털듯이 조사해서 거짓이 있지 않은 지를 확인”하게 하면, 수급 신청자는 모욕을 느끼게 되고 담당 공무원은 검열자가 될 수밖에 없다.
사회보장정보원에서 2012년 1월~12월까지 기초생활수급을 신청했지만, 부양의무자 기준 때문에 탈락한 5천 가구를 분석했는데, 이 중 46%인 2,212가구는 부양의무자의 소득이 최저생계비 미만이었다. 결국, 정부는 스스로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가족들에게 더 가난한 가족을 부양하라고 강요했던 것이다.
가난은 비난과 모욕, 차별을 받아야 할 잘못도 아니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이미 빈곤 문제를 해소할만한 경제적 능력을 쌓아 올렸다. 중요한 것은 생각의 전환이고 정치적 의지이다. 무엇보다도 정부가 가지고 있는 가난에 대한 왜곡된 인식을 바꿔야 한다. 정부는 “왜 세금으로 부자들을 돕는 것은 장려하고,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억압하는가?”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다행히도 5월 대통령 선거에 나선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 정의당 심상정 후보가 모두 부양의무제 폐지를 약속했다.
언제까지 가난한 가족에게 더 가난한 가족을 부양하라고 강요할 것인가? 완전 폐지든 단계적 폐지든 부양의무제 폐지는 차기 정부의 복지 의지를 확인하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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