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물질적 가치와 영적 가치

  • 오피니언
  • 오늘과내일

[오늘과 내일]물질적 가치와 영적 가치

  • 승인 2017-04-09 11:53
  • 신문게재 2017-04-10 23면
  • 유낙준 주교(성공회 대전교구장)유낙준 주교(성공회 대전교구장)
살다보면 예기치 않게 수없이 길을 잃는 경우가 생깁니다. 갈 길이 어딘지 모를 때 참으로 당혹스럽습니다. 그러한 상황에 처했을 때 저는 수도원에 갑니다. ‘어디서부터 인생의 방향을 잃었지?’ 라는 질문을 하면서 수도원의 산길을 천천히 걷습니다. 특히 친한 친구와 관계가 부서지게 되는 때나 사랑하는 가족과 감정이 상하게 되는 때에는 더욱 자신의 인생길을 돌아보게 됩니다. ‘무엇으로 인해 어디서부터 내가 살 이유를 잃어버리게 되었지?’ 라는 내면의 질문을 자신에게 수없이 하는 시간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런 내면의 깊이에 가고 싶을 때에 수도원의 가장 깊은 곳으로 들어갑니다.

지적욕구가 활발하게 움직이며 영적인 제훈련장인 신학대학원에서는 오후 5시의 저녁기도(만도)에 이어 오후 9시에 마지막 기도(종도)를 올린 후 다음날 아침기도를 마치는 6시 반까지 ‘대침묵’이라고 부르는 시간을 갖습니다. 밤동안의 대침묵은 신의 사람을 만든다는 전통에 따른 이 규칙은 형식으로는 있었지만 실제로는 잘 지켜지지는 않았습니다. 대침묵 동안 독서도 할 수 있는 느슨한 규칙이었고, 밤 동안의 대침묵은 신의 사람들을 양성하는 곳의 밤 생활의 분위기를 드러내는 언어입니다. 밤사이에 내 입의 활동을 멈추게 하고 신의 소리를 듣고자 하는 대침묵은 낮의 시끄러움을 잠재우고 고요함에 우리를 머물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 온갖 물질의 구속에서 벗어나 영적 인간을 맞이하고자 하는 것이 대침묵이 주는 가치입니다. 대침묵이라는 신의 소리를 듣는 시간을 통해 새날의 아침을 맞이하여 신의 소리에 따른 진리로 활동하기를 바라는 낮이 되는 것입니다. 과거를 돌아보니 신이 기뻐하는 인간이 되는 대침묵이 내 자신에게 적용되기를 간절히 바랬지만 왕성한 청년시절의 열기로 인하여 그 가치를 제대로 잡지 못하고 그냥 흘려보냈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

해가 진 이후부터 하루가 시작된다는 것이 히브리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밤부터 하루가 시작된다고 믿었던 것의 출발은 곧 어두운 밤에 신의 소리가 임한다는 것입니다. 신으로부터 선택받았다는 자의식이 신의 소리를 듣는 것을 우선시한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의 삶에 적용되어 교회력을 만들고 사순절의 고통이 지나고 부활절이 오는 것을 세운 것입니다. 보통 춘분이후의 첫 번째 보름달이 뜬 후 첫 주일을 부활절로 잡는데, 이는 결국 그리스도 전통에서 부활절이 태양력이 아닌 태음력을 기준으로 잡는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침묵과 어둠이 내린 후에 부활의 새로운 삶을 맞이하는 것이 신의 인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야 신이 선택한 인간으로서 신의 소리를 들어 시끄러운 세상의 소리를 잠재워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남아 있는 모습이 수도원입니다. 이러한 수도원적인 삶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사는 연약한 현대인에게 인간적으로 살 길을 제공해 줍니다.

오늘날 과학기술이 급격히 발달되는 우리사회는 물질로 인해 풍요로와진 듯 하지만 너무나 많은 물질들은 다른 한편 누군가의 빈곤과 고통을 낳고, 모두가 물질을 차지하려는 욕망과 행동으로 인해 때로는 어떤 사람에게는 숨이 막혀 못살 지경이 되었고 자신마저도 결국 인간의 존엄성이 사라진 모습으로 인하여 무력한 삶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연약하고 무력해진 자신 속에서 보다 더 인간적인 새로운 영적인 삶이 시급하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신의 소리를 듣고 신에 의지해서 삶을 세우는 수도원적인 대침묵을 통한 인간의 존엄성을 발견하는 영적인 가치를 익히고자 한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존엄은 물질로 인해서라기 보다는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는 신이 머무는 자리에서 이루어집니다. 교육과 법은 바로 이 인간의 존엄성을 위하는 자리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최고의 가르침인 종교 역시 인간의 존엄성을 꽃피우는 자리에 위치하는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이 자리하는 곳이라면 길을 잃어버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인간이 존엄한 그 자리인 신이 주신 거룩한 곳에서 영적인 존재로 만나시기를 빕니다.

유낙준 주교(성공회 대전교구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학대 마음 상처는 나았을까… 연명치료 아이 결국 무연고 장례
  2. 김정겸 충남대 총장 "구성원 협의통해 글로컬 방향 제시… 통합은 긴 호흡으로 준비"
  3. 원금보장·고수익에 현혹…대전서도 투자리딩 사기 피해 잇달아 '주의'
  4. [대전미술 아카이브] 1970년대 대전미술의 활동 '제22회 국전 대전 전시'
  5. 대통령실지역기자단, 홍철호 정무수석 ‘무례 발언’ 강력 비판
  1. 20년 새 달라진 교사들의 교직 인식… 스트레스 1위 '학생 위반행위, 학부모 항의·소란'
  2. [대전다문화] 헌혈을 하면 어떤 점이 좋을까?
  3. [사설] '출연연 정년 65세 연장법안' 처리돼야
  4. [대전다문화] 여러 나라의 전화 받을 때의 표현 알아보기
  5. [대전다문화] 달라서 좋아? 달라도 좋아!

헤드라인 뉴스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충남 행정통합 첫발… '지방선거 前 완료' 목표

대전시와 충남도가 행정구역 통합을 향한 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장우 대전시장과 김태흠 충남지사, 조원휘 대전시의회 의장,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은 21일 옛 충남도청사에서 대전시와 충남도를 통합한 '통합 지방자치단체'출범 추진을 위한 공동 선언문에 서명했다. 대전시와 충남도는 수도권 일극 체제 극복, 지방소멸 방지를 위해 충청권 행정구역 통합 추진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를 갖고 뜻을 모아왔으며, 이번 공동 선언을 통해 통합 논의를 본격화하기로 합의했다. 이날 공동 선언문을 통해 두 시·도는 통합 지방자치단체를 설치하기 위한 특별..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대전 자영업은 처음이지?] 지역상권 분석 18. 대전 중구 선화동 버거집

자영업으로 제2의 인생에 도전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정년퇴직을 앞두거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자신만의 가게를 차리는 소상공인의 길로 접어들기도 한다. 자영업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이나 메뉴 등을 주제로 해야 성공한다는 법칙이 있다. 무엇이든 한 가지에 몰두해 질리도록 파악하고 있어야 소비자에게 선택받기 때문이다. 자영업은 포화상태인 레드오션으로 불린다. 그러나 위치와 입지 등을 세밀하게 분석하고, 아이템을 선정하면 성공의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에 중도일보는 자영업 시작의 첫 단추를 올바르게 끼울 수 있도록 대전의 주요 상권..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尹정부 반환점 리포트] ⑪ 충북 현안 핵심사업 미온적

충북은 청주권을 비롯해 각 지역별로 주민 숙원사업이 널려있다. 모두 시·군 예산으로 해결하기에 어려운 현안들이어서 중앙정부 차원의 지원이 절실한 사업들이다. 이런 가운데 국토균형발전에 대한 기대가 크다. 윤 정부의 임기 반환점을 돈 상황에서 충북에 어떤 변화가 있을 지도 관심사다. 윤석열 정부의 지난해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발표한 충북지역 공약은 7대 공약 15대 정책과제 57개 세부과제다. 구체적으로 청주도심 통과 충청권 광역철도 건설, 중부권 동서횡단철도 구축,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구축 등 방사광 가속기 산업 클러스터 조..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대전-충남 행정통합 추진 선언…35년만에 ‘다시 하나로’

  •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대전 유등교 가설교량 착공…내년 2월쯤 준공

  •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중촌시민공원 앞 도로 ‘쓰레기 몸살’

  •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 3·8민주의거 기념관 개관…민주주의 역사 잇는 배움터로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