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리뷰]우리나라 최초의 기초과학 가속기 라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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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언스 리뷰]우리나라 최초의 기초과학 가속기 라온

  • 승인 2017-04-09 10:08
  • 신문게재 2017-04-10 22면
  • 홍병식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홍병식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홍병식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 홍병식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매년 10월만 되면 전 세계 언론은 노벨상 발표에 주목한다. 우리나라 언론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노벨상 수상자와 그들의 업적에 관한 특집기사를 연속으로 내보내고, 요즘엔 이에 추가해 우리나라가 왜 아직도 노벨상을 받지 못하는지에 대한 이유를 분석하기에 여념이 없다. 특히 지금까지 22명의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였고, 1949년 유카와 히데키 교수 이래 드문드문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해 오던 일본이 2000년대 들어 거의 매해 그것도 무더기로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자, 우리나라는 부러움과 함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필자는 주변에서 노벨과학상에 대한 의견을 물어 오면, 한 마디로 우리나라가 왜 노벨상을 기대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답하곤 한다. 우리나라는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기초과학 발전을 최우선 순위에 둔 적이 없다. 모든 국가정책의 중심에는 산업화와 경제성 논리만 자리 잡았고, 물리학과 같은 기초과학은 산업화를 위한 도구로 여겨졌다. 고도의 경제성장을 거듭하던 산업화 시대에도 겉으로는 과학입국을 내세웠지만 과학의 실상은 그에 걸맞지 않았다. 이러한 현실에서 노벨상은 차치하고, 우리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을 위해서 기초과학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데 반백년 가까이 걸렸다.

이제 우리나라가 더욱 성장하기 위해 기초과학의 탄탄한 체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은 이해하겠는데, 아직 연구를 위한 기초체력이 충분히 확보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문제이다. 90년대 들어 선택과 집중이라는 명분 아래 대형 연구 과제를 만들어 지원하기 시작하였으나, 많은 기초분야에서 근본적인 과학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력과 지식, 학문적 전통이 충분치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런 상황 하에서 과학 분야의 세계적인 연구결과를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솔직히 인정해야 한다.

“공짜는 없다”라는 상식은 과학에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필자가 연구하는 핵물리 분야를 예로 들어보자. 핵물리 분야는 대형 가속기를 많이 이용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아직 핵물리학을 위한 가속기가 없다. 국내에서 핵물리학을 연구하기 위해서는 산업이나 의료용으로 제작한 다른 목적의 가속기에 빌붙어 입자 빔을 조금 빌려 쓰는 수밖에 없는데 이마저 여의치 않은 경우가 많다. 본격적인 핵물리 연구를 위해서는 결국 외국의 대형 가속기 연구소를 방문하는 수밖에 없는데, 대부분의 연구가 국제공동연구의 형태로 진행되며 이들 연구소가 외국의 연구자들에게 호의적이라는 점이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커다란 투자 없이 연구해오던 우리나라 연구자들은 요즈음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즉 지금까지는 큰 연구비가 들지 않고 주저자로 논문을 출판할 수 있는 데이터 분석에만 집중해도 별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각 실험에서 대한민국의 경제 규모에 걸 맞는 수십 내지 수백억짜리 검출장치를 건설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았을 때 사정을 봐주던 관행이 관성적으로 이어져 왔던 상황이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요구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우리나라가 외국 연구소에 있는 고가의 가속기 장비를 무료로 사용해 왔던 만큼 이제는 수요가 많은 가속기를 국내에 건설해 학문분야의 발전에 기여할 필요도 대두되었다. 공짜의 시대가 뒤늦게 저물고 있는 중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2011년 정부가 기적적으로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춰 당시 새로 설립된 기초과학연구원(IBS)에 순수과학을 위한 라온 중이온가속기를 건설하기로 결정했다. 놀랍게도 라온은 우리나라 최초로 기초과학 연구를 목표로 건설되는 대형 가속기시설이다. 지금까지 과학자들의 바람은 간절했지만 우리나라가 순수한 학문연구를 위한 대형가속기를 보유할 수 있을까 의심해 오던 터였다. 물론 여러 고비는 있었지만 라온 건설은 현재 2021년 완공을 목표로 바쁘게 진행 중이다.

라온 중이온가속기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다양한 핵의 구조를 연구하고,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익숙한 전자기력보다 100배나 더 강한 핵력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리고 주기율표에 나열된 무거운 원소들의 기원을 연구하고, 우주에 존재하는 중성자별의 구조를 밝히고자 한다. 현재 비슷한 종류의 가속기를 미국이나 독일에서도 건설 중이나 라온은 이들보다 훨씬 더 희귀한 핵을 생성시킬 수 있다. 핵물리학자들은 이와 같은 연구가 궁극적으로 어떤 식으로 인류의 삶을 변화시킬지 모른다. 하지만 경험적으로 인터넷이나 가속기 암치료기와 같이 우리 세대가 아니라면 다음 세대에서라도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기초과학의 본질이 그렇다.

미래에 라온 중이온가속기를 이용하여 연구하고자 계획 중인 과학자의 한 사람으로서 우리나라 가속기에서 세계적인 국제공동연구 그룹이 만들어져 실험하고 세계 최초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모습을 그려보면 상상만으로도 행복해진다. 또한 라온을 이용한 연구결과들이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는 분야로 다양하게 활용되어, 기초과학에 더욱 활발한 투자가 이루어지는 선순환 구조가 하루빨리 정착되기를 기원해 본다.

홍병식 고려대학교 물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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