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드로 보티첼리 <프리마베라 Primavera> 1482년, 203x314cm, 우피치 미술관 |
꽃샘추위가 아직 남아있지만 3월부터는 봄이라한다. 겨울의 기운을 밀어내려는 듯 남쪽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은 이스트 가루처럼 석회같이 굳은 내 마음 여기저기 구멍을 낸다. 어느 시인의 말처럼 꽃빵처럼 내 마음은 생기와 희망으로 잔뜩 기대로 부풀어지기도 한다.
명화 중에는 봄이라고 하면 많은 사람들은 먼저 <프리마베라>가 생각난다고 한다.
봄의 비유(Allegory of Spring)로도 불리는 <프리마베라>는 지금은 <비너스의 탄생>과 함께 우피치 미술관이 자랑하는 소장품이 되었지만 원래는 카스텔로(Castelo)에 있는 피에르 프란체스코 데 메디치(1430~1467)의 별장을 장식하기 위해 보티첼리가 그린 그림이다.
주렁주렁 열린 오렌지와 정원에 가득 피어있는 만발한 꽃들, 거기다 비너스와 삼미신의 군무 등은 봄을 맞이하는 들뜬 마음을 충족시켜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알고 보면 그렇게 단순한 그림이 아니다. 봄기운을 가문의 번영과 연결시킨 즉 인간의 욕망과 예술을 결합한 대표적인 그림이 것이다.
보티첼리는 식스투스 4세의 초청으로 로마에 2년 정도 머물면서 바티칸 궁전의 시스티나 성당(Cappella Sistina)의 벽면에 대형 프레스코를 세 점이나 그렸다. 그리고 피렌체로 돌아오자마자 이 시기에 결혼한 피에르 프란체스코의 침실을 장식하기 위한 그림을 주문 받았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주문자인 피에르 프란체스코가 본인 결혼의 정당성을 합리화하고, 또 파치음모사건으로 곤란에 처한 가문의 영광을 위함이 주문 의도라고 한다.
이즈음 메디치가문의 젊은 수장인 로렌초는 ‘파치음모사건’을 나름 해결했지만 넘어야 할 산이 남아 있었다. 땅바닥에 떨어진 자존심을 회복하는 것은 물론, 교황님과 좋은 관계를 맺어 가문의 부와 명예를 지켜야 했다.
그래서 로렌초는 자신의 사촌조카인 피에르 프란체스코를 교황님과 친한 나폴리왕국의 따님과 정략결혼을 시키고자 계획했다. 양가 부모는 서로의 이익을 위해 쉽게 합의를 했는데, 문제는 며느리감이 너무 어렸다는 것이다. 어린 신부를 며느리로 맞이하면 말 많은 피렌체의 귀족의 입방아에 오르내릴 것이 두렵기도 했지만 가문의 회복이 급한 로렌초는 이 결혼을 강행했다. 그리고는 이 결혼의 정당성과 승승장구할 메디치 가문임을 만천하에 알릴 방법을 강구했다.
로렌초는 보티첼리를 불러서 이 모든 상황을 털어놨다. 메디치의 전속화가로 메디치가의 혜택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은 보티첼리는 자신의 모든 지식과 기량을 동원하여 기대 이상의 작품을 로렌초에게 안겨주었다.
우선 그는 평소 안면이 있는 당대 최고의 인문학자인 안젤로 폴리치아노(Angelo Poliziano, 1454~94)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그리고는 그를 통해 고대 로마의 시인인 오비디우스의 ‘파스티’나 호라티우스의 ‘송가’를 알게 되었다. 이 스토리를 바탕으로 그는 로렌초의 의도를 누구도 알아차리지 못할 만큼 근사하게 시각적으로 표현해내었는데, 이렇게 탄생된 그림이 바로 <프로마베라>였던 것이다.
이 그림은 시선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조금씩 이동해야하며 감상해야한다.
가장 오른쪽을 보면 거의 푸른색의 몸을 가진 서풍 제피로스(Zephyros)가 힘껏 입을 부풀려 바람을 불어대고 있다. 유럽에서는 남풍이 아닌 서풍이 봄소식을 전한다고 하니 제피로스가 열심히 불어대는 건 봄바람이다. 그러나 제피로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봄기운을 느낄 수는 없는 겨울 숲의 모습이다.
조금만 왼쪽으로 시선을 옮겨보자. 제피로스가 무서워 도망가는 여자아이를 강제로 붙들려고 한다. 옷차림이 허술하고 겁에 질려 있는 이 여자아이는 클로리스이다. 그러나 클로리스의 입에서는 이미 한 줄기 봄꽃이 품어 나오고 있다. 그러더니 어느새 화관을 쓰고 봄의 꽃으로 장식된 아름다운 옷을 입은 성숙한 여인으로 변신했다. 여신 플로라(Flora)다. 즉 피에로 프란체스카는 결혼을 두려워하는 미성년자인 아가씨를 단번에 결혼적령기의 아름답고 성숙한 여인으로 바꿀 만큼 매력 있는 신랑감이라는 말이다.
온갖 종류의 꽃이 만발한 아름다운 정원에는 사랑의 여신 비너스가 우아한 모습으로 서 있다. 그 옆에서는 삼미신이 아름다운 춤을 추고 있다. 장난꾸러기 큐피드는 무작위로 화살을 쏜다는 표시로 눈을 가리고 화살을 쏘고 있다. 그러나 정확하게 삼미신을 겨냥하고 있다.
눈을 가린 이유는 이 둘의 사랑이 비너스의 사랑처럼 순수한 맹목적인 사랑이라는 의미이고, 삼미신을 향하고 있는 이유는 신부가 삼미신이 의미하는 여성적인 매력과 아름다움 그리고 창조성까지 겸비한 재원임을 의미한다. 이 모든 것을 갖춘 며느리로 맞이한 메디치 가문은 앞으로 더욱 번성하고 번영을 누릴 것임은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다른 생각을 갖지 말라는 경고이기도 하다.
만약 이 앞날을 방해하는 암운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모두 다 제거하겠다는 의지는 그림 왼쪽에서는 지팡이로 하늘의 먹구름을 휘젓고 있는 전령의 신 헤르메스를 통해 보여준다.
피렌체를 중심으로 전 유럽을 장악하고자 했던 메디치가의 번영은 비록 영원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과거의 영화를 되찾고 당대의 위기를 극복하고자하는 로렌초의 간절한 바람은 춥고 움츠린 겨울을 화창한 봄으로 표현한 보티첼리의 솜씨로 충분히 표현되었다. 그야말로 <프리마베라>는 인간의 욕망과 예술이 결합하여 만들어낸 전형적인 문예부흥기의 그림이라 하겠다.
정경애 보다아트센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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