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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 9개월이라 밤새 배가 뭉쳐서 일어나지도 못했고, 숨을 쉴 수 없을 만큼의 통증으로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새벽에 산부인과로 전화를 했더니 “아무래도 배 속의 아이를 빨리 꺼내야겠다” 고 한다.
나는 겁부터 났다. 시어머니의 전철을 나도 밟게 되지는 않나하고. 그런데 이유를 모르는 시아버님은 아침밥상을 들고 오는 며느리에게 “너는 야단맞았다고 밤새 우냐” 며 또 한 번 꾸중을 하신다. 계속되는 통증으로 인해 아침상을 드리고 설거지는 어머님께 맡기고 병원으로 오는 내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산부인과 병원에 가니 의사선생님 말씀이 “늑막에 물이 찼어요. 아이가 위험하니 바로 제왕절개수술 해야겠어요”라고 하신다.
앞이 막막했지만, 잘 이겨내야겠단 생각만 들었다.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아버님이 그렇게 하심에도 불구하고 전화를 드렸다.
“잘 도착했어요. 아버님 건강 잘 돌보세요. 담에 또 뵈러갈 게요.” 아버님의 마음을 어디까지 헤아려야 하는 것일까.
남편에게나 좋은 아버지의 모습으로 35년을 살았고, 나는 겨우 좋은 모습을 1년만에 봤다.
아픈 증세로 받아들이기엔 속상한 일들이 많았다. 그러나 어머님을 생각하니, 나의 속상함은 먼지에 불과했다. 아버님의 증세는 좋아졌다 나빠졌다를 반복하셨다. 아버님의 건강에 또 빨간 신호등이 켜졌다. 시골길에서 넘어지셔서 고관절수술을 하셨지만 수술이 잘못된 바람에 충대 병원에서 다시 수술을 받으셔야만 했다.
그 당시에 ‘요양보호사’란 직업이 새롭게 등장했다. 어머님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하여 아버님을 보호하면서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지원금을 받게 하신다면 가계에도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서류를 준비해서 교육이수를 마치고 자격증을 받게 되었다. 그 다음은 아버님을 요양등급을 받게 하는 것이었다. 아버님은 ‘요양’이란 단어에 “너가 나를 갖다 버리냐? 죽으면 죽었지 요양병원에 안 간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신다. 할 수 없이 설득시켜 거의 1등급을 받을 수 있는 것을 겨우 3등급으로 판정받았다.
한 달이 지나고 석 달째쯤 되었을 때 요양등급 받은 게 이렇게 좋은지 몰랐다면서 미안해하셨다.
대전에 아는 센터장님을 통해 개인부담금과 공제부분을 거의 최소화하여 많은 금액을 어머니 통장으로 입금되게 해드렸다. 대한민국의 국적을 갖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고 우리나라가 이렇게 고마울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5000년 동안 보릿고개를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온 우리 민족이다. 다쳐서 일 못한다고 생계비를 지원해 준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던 우리 조상들 아니었던가? 매월 통장에 입금되는 돈을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자랑스럽고 힘이 되었다.
그로 인해 아버님의 짜증은 나에게는 미안해하는 마음으로 바뀌셨고 국가에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셨다.
얼마 후 시외삼촌께서 돌아가셨다. 시어머님의 오빠였다. 장례식에 들른 후 거동을 못하시는 아버님을 뵈러 댁으로 찾아뵈었다.
식사를 차려드리자, 아버님께서 “나는 너가 나를 다시는 보러오지 않을 줄 알았다. 맨날 짜증만 내서… 고맙다…” 내 손을 잡아주셨다. 따뜻한 체온이 느껴지면서 목이 메고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버님 손을 잡아드렸다. 지켜보시던 어머님 눈에도 눈물이 고인다. 최근에 어머님께서 이유도 모를 불안으로 잠을 이루지 못해 병원을 찾았더니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하신다. 약을 먹은 뒤로는 불안한 마음이 많이 사라졌다고 한다.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와도 기쁘지도 않고, 손자를 봐도 즐겁거나 행복하지 않다고 하신다. 어머님 눈물을 닦아드리고 싶다. 아버님과 어머님을 기쁘게 해 드릴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생각했다.
다섯이나 되는 어린 자식들을 가슴에 묻고 사시는 어머님의 상실에 대한 상처를 어찌 치유해 드릴 수 있을까?
참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표현해야 하고, 때로는 어린아이처럼 투정부려도 좋다. 그것이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방법 일 수 있다.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
*‘박경은·김종진의 심리상담 이야기’는 박경은 가득이심리상담센터 대표와 김종진 한국지문심리상담진흥원 원장이 격주로 칼럼을 게재하는 가운데 ‘심리’의 창을 통해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엿볼 수 있는 공간입니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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