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이태원 길을 지나는 나의 눈에 월드투어 중인 브로드웨이 히트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공연을 알리는 깃발이 봄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지킬 앤 하이드. 1885년, 영국의 의사이며 과학자인 헨리 지킬은 고결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아버지가 정신병을 앓으면서 폐인이 되는 모습을 지켜보고 인간의 정신에서 어두운 부분들을 분리하고 제거하여 사회의 밑바닥으로 내몰린 존재들을 구해내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된다.
자신이 발명한 약물을 자신에게 투약한 후, 지킬박사는 인격이 선(善)과 악(惡)으로 완전히 분리되면서 선(善)인 헨리 지킬과 악(惡)인 에드워드 하이드라는 두 존재가 한 몸 안에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이드가 된 지킬박사는 갑자기 생긴 힘을 이용하여 사회에 악(惡)인 부패한 종교인과 정치인과 부자들을 살해하는 금지된 반사회적인 욕망을 채워가며 알 수 없는 기쁨을 취하기 위해 약물을 더 복용하게 된다. 그러면서 하이드는 더 강하게 성장하고 결국 온 몸을 지배하게 됨으로 약물 없이도 하이드로 변하기 시작한다.
온몸을 차지해 버린 하이드로 인해 사랑하는 이들이 위험해 지는 것을 염려하여 죽음으로써 하이드라는 악을 스스로 제거한다는 내용이다.
이 소설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이 쓴 단편소설로 겉으로는 체면을 차리면서도 속으로는 욕정으로 가득했던 19세기 인간의 선(善)과 악(惡)의 내면적 모순에 관해 보여주는 최고의 안내서들 중 하나였다.
오늘날까지 이중인격을 설명하는 대명사로 지킬 박사와 하이드라는 이름이 통용되듯이 우리에게는 선(善)과 악(惡)이 동시에 존재하고 있다. 우리에게 잠재되어 있는 선(善)과 악(惡)은 자신이 어떤 이념으로 살아가느냐에 따라 한 쪽이 더 두드러지게 들어내어지곤 한다.
탈무드에도 선(善)과 악(惡)에 대해 다루고 있다. 노아의 홍수 때 모든 것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노아의 방주로 몰려들었다. 그중에서도 선(善)도 끼어 있었다. 그러나 노아는 짝이 없이 혼자인 것은 방주에 태우지 않았기에 선(善)의 짝인 상대로 찾은 것이 바로 악(惡)이었다.
그때 이후로 선(善)이 있는 곳에는 악(惡)이 함께 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 사람은 왜 선(善)과 악(惡)이 같이 존재하는 것일까? 그건 아마 사람은 끊임없이 스스로 갈등하며 발전시켜나가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일 것이다.
‘괴물과 싸울 땐 나 자신도 괴물이 되지않게 주의하여야 한다. 내가 심연을 들여다보면 그 심연도 나를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니체의 명언에서는 아무리 악(惡)이 난무하는 괴물같은 세상에서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 자신을 갈고 닦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선(善)과 악(惡)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영어로 선(善)이 'good'으로 번역되는 것으로 봐서도 선(善)은 좋은 것으로 악(惡)은 나쁜 것으로 구분을 지어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람마다 선(善)과 악(惡)의 경계선은 많이 다를지 모른다. 확실히 구분 짓기는 쉽지 않지만 적어도 필자의 생각으로는 어떤 생각이나 행동을 하고 나서 뭔가 찜찜한 것 없는 즉, 양심에 걸릴 게 없는 것이 선(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이 세상이 악(惡)이 난무하는 괴물 같은 사회라 할지라도 적어도 나만이라도 세상의 밑바닥으로 내몰린 존재들을 구해내려 사명감을 가졌던 지킬 박사의 선한 마음을 간직한 채 살고 싶다.
김소영(태민) 수필가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