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성준 예산여고 교사 |
그리고 왜 사냐는 질문에는 대개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러면 어떤 것이 행복이냐?”고 물어보면, 대개 “저의 꿈(목표)을 이루면 행복해질 것 같아요!”라고 말한다. 그러면 또 물어본다. “혹시 그 꿈을 못 이루면 어떻게 하지?” 대부분 이 대목에서 학생들은 당황하면서 할 말을 잘 못 찾고 이미 불행에 빠진 모습이 되곤 한다.
역사 수업을 진행하면서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사를 가르칠 때, 온갖 고난을 무릅쓰며 목숨을 바쳐서 투쟁한 분들의 이야기와 반면에 일제침략자들에게 붙어서 반민족 행위를 했던 친일파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대다수 학생들은 분노의 눈빛으로 친일파를 규탄하고 고귀한 희생을 마다하지 않은 독립투사들에게 존경의 마음을 표현하곤 한다. 특히 예산의 독립투사이신 윤봉길 의사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학생들은 감동하며 그런 분이 우리 고장 출신이라는 데에 자부심을 느낀다. 하지만, “그 시대에 내가 살았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어떻게 살았을까?”라는 질문에는 선뜻 대답하지 못한다. 정말 삶의 목적의식이 뚜렷한 몇 학생만이 “비겁하게 나쁜 짓을 해서 잘 먹고 잘 사느니, 차라리 신체적 고통을 받고 살더라도 정의롭고 진실하게 살겠다!”고 대답한다.
대다수의 학생들이 대답을 못하는 이유는 바로 행복의 조건을 당장의 정신적ㆍ신체적 편안함이나 사회적 지위나 부(富)의 획득에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과연 당장의 정신적ㆍ신체적 편안함이나 사회적 지위나 부(富)를 획득하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조건일까? 그런 것들만이 행복의 조건이라면 분명 독립운동가들은 ‘불행한’삶을 사신 분들이며, 윤봉길 의사도 유관순 열사도 ‘불행하게 산’ 사람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분들의 삶이 “불행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나는 고등학생 시절에 나름대로 ‘이 세상을 좀 더 모든 사람이 골고루 행복하게 잘 사는 세상으로 바꿔나가는 데에 작은 노력이라도 보태야겠다’는 꿈을 꾸었다. 역사 교사로 28년을 살아온 지금도 그 꿈에는 변화가 없고, 자부심을 가지고 누구보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학생들이 수준 낮은 단순한 행복만을 찾지 말고, 수준 높은 지고지순한 행복을 추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비록 원하는 대학에 입학하지 못해도, 사회적 지위를 획득하지 못해도, 돈 잘 벌지 못해도, 신체 건강하지 못해도, 예술적 성공을 이루지 못해도, ‘무엇이 되느냐’보다 ‘어떻게 사느냐’에서 행복을 느끼고 감사하며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은 취직을 해서 먹고 사는 문제가 우리의 청소년에게 닥친 가장 큰 문제여서 그런 수준 높은(?) 생각을 할 여유도 없다지만, 그래도 ‘내가 배고프게 살지만 않는다면, 진정한 바른 뜻을 세워서 언제나 나의 삶의 방식에 자부심을 가지고 행복하게 살겠다!’고 말하는 그런 학생을 많이 보고 싶다.
한성준 예산여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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