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한 권력과 엄청난 재력 거기다 로마의 정치적 후광까지 입고 승승장구하는 메디치 가문은 경쟁가문의 시기와 질투를 한 몸에 받았음은 상상하고도 남는다. 그 중에서도 유독 도끼눈을 하고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며 째려보던 가문이 바로 파치(Pazzi)가문이었다.
1478년, 파치가는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와 짜고 메디치 가문의 수장들을 암살할 계획을 세웠다. 암살의 목표는 메디치가의 젊은 수장 로렌초였다. 거사의 순간이 다가왔다. 로초렌가 메디치가의 가족성당인 산 로렌초 성당에서 부활절미사를 보는 중에 뒤에서 칼로 찔렸다. 그 순간, 민첩한 로렌초는 귀 밑에 약간의 상처만 입은 채 성물보관소로 몸을 피했으나, 전날 잔뜩 술을 마신 동생 줄리아노는 갑작스러운 공격에 열아홉 곳에 깊은 칼자국을 남긴 채 현장에서 즉사하고 말았다. 이 사건이 그 유명한 ‘파치가의 음모’사건이다.
엎친데 덮친격일까? 암살의 위기를 모면한 로렌초가 채 숨을 고르기도 전에 교황 식스투스 4세의 보복정치가 시작이 되었다. 교황은 이탈리아의 패권을 노리던 나폴리 왕국의 국왕 페란테(Ferrante)를 원격 조정하여 피렌체에 전쟁을 선포하게 한 것이다.
전쟁이 임박해 오자 피렌체 시민의 불안감은 극에 달했다. 전대미문의 위기에 몰린 로렌초는 이를 극복하기 위한 대응책을 제시해야했다. 우선 시민을 향한 진심어린 연설로 피렌체 시민의 불안감을 잠재웠다. 그리고는 혈혈단신 홀로 피렌체를 떠나 피사 부근에서 갤리선을 타고 나폴리로 향했다. 나폴리 왕이자 적장 페란테를 직접 만난 로렌초는 3개월을 머무면서 자신의 가장 강력한 무기인 해박한 인문학적 지식에서 나오는 달변과 문화적 소양으로 페란테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로렌초의 승리, 나폴리 왕국과 피렌체 공국의 화친은 물론 교황과도 화해를 했다. 로첸초는 피렌체와 메디치 가문의 위기를 1년 만에 완전히 극복하고 금의환향한 한 것이다. 위대한자 로렌초(Il Magnifico)임에 틀림없는 지혜와 위엄을 갖춘 메디치가의 진정한 오너였다 하겠다.
▲ 산드로 보티첼리 <팔라스와 켄타우로스> 1482년, 204x147.5 cm, 우피치 미술관 |
<비너스의 탄생> <프리마베라> 등으로 지금도 사랑을 받고 있는 화가 산드로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 1445~1510)는 메디치가의 지원을 누구보다도 많이 받은 대표적인‘메디치 맨’이다. 그 은혜에 보답을 하기 위해서일까, 보티첼리는 <팔라스와 켄타우로스>에 불굴의 용기와 지략으로 피렌체를 구한 로렌초의 업적과 메디치가에 대한 극도의 존경을 우의적으로 담아내었다.
이 그림의 주인공은 동물적 본능을 상징하는 반인반마의 괴물 켄타우로스(Centauros)의 머리채를 잡고 있는 지혜와 승리의 여신 팔라스(Pallas)다. 힘깨나 쓸 것 같은데 어찌된 일인지 잔뜩 겁을 집어 먹고 슬픈 표정을 한 그는 팔라스의 의지에 자신의 모든 것을 맡긴 듯 무기력한 모습이다.
도끼 모양의 창을 든 팔라스(처녀를 의미)는 같은 전쟁의 신인 아레스와는 달리 이성과 합리성으로 무력을 제압한 전쟁의 신 아테나(Athena)다. 아테네 시의 수호신인 팔라스는 이 그림에서는 로렌초로 변신했는데, 그녀가 입고 있는 화려한 옷에 메디치 가문이 사용한 다이아몬드 반지를 새겨 노골적으로 팔라스가 메디치 가문의 아들 로렌초임을 말하고 있다.
자신이 관장하는 석조로 된 신전으로 들어가려는 반인반마 켄타우로스를 머리와 몸에 월계수를 두른 팔라스가 간단히 제압하는 모습은 로렌초의 승리가 무력보다는 지혜와 인문학의 소양에서 비롯되었음을 보여준다.
정경애 보다아트센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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