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충식 문화칼럼]박근혜 헤어스타일로 우리가 잃은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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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충식 문화칼럼]박근혜 헤어스타일로 우리가 잃은 것들

  • 승인 2017-03-22 11:53
  • 신문게재 2017-03-23 22면
  • 최충식 논설실장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 최충식 논설실장
전담 미용사 자매는 대통령 파면 뒤에도 서울 삼성동 자택을 찾아 출장 메이크업을 했다. 늘 하던 화장에 늘 하던 올림머리 주문이니 좀 쉬울 법도 하다. 미용사들은 “짧게 깎아주세요”보다 “멋지게 깎아주세요” 같은 막연한 주문에 힘들어 한다. 미용사가 신속을 놓치면 머리 스타일에 무딘 고객을 놓치고 정확성을 잃으면 스타일에 신경 쓰는 고객을 잃게 된다. 중도일보 사시 '신속'과 '정확'은 미용사들의 신조이기도 하다.

어제도 오늘도 어쨌든 '헤어'가 관심이다. 검찰 출석 하루 전날엔 연분홍 헤어롤을 머리에 꽂은 여성이 등장했다. 이정미 전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 비난용 퍼포먼스였다. 아무렇든 중요한 건 뇌물수수, 직권남용, 비밀누설 등의 혐의를 밝히는 일이다. 그런데 왜 헤어인가. 헤어스타일은 여성의 성 정체성과 심리 변화나 상태를 인지하는 수단이다. 그러기에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짧은 단발의 나탈리 포트만처럼 하고 검찰 특별수사본부에 나왔다면 그게 더 희한했을 것이다.

박근혜 스타일은 더구나 정치적 효과 극대화 장치였으며 고도의 정치학이었다. 올림머리가 비난의 대상이 된 이유는 회당 50만~70만원, 연간 2억원 내외로 추산된다는 미용 비용에 있지 않다. 세월호 참사로 생사가 갈린 그 시각에 철없는 중세 왕비처럼 올림머리 단장을 받으며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했기 때문이다. “올림머리를 한 것이 탄핵 사유가 되나”며 맥락(context)과 부합성(congruence)을 흐리는 인사가 대선 주자 중에도 있다.

그런 말에 일부러 속기도 한다. 올림머리에 목련꽃 웃음을 머금으며 박정희 시절 향수를 자극하는 전략에 속았듯이 말이다. 육영수 헤어스타일로 유세하려고 차 안에서 목을 꼿꼿이 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주자 시절에 약간 짧은 웨이브 단발을 잠깐 선보여 부모 후광에서 독립한다는 섣부른 분석이 나왔다. 같은 해 미국 방문 때는 보스턴공항 검색대에서 빼낸 실핀 24개가 화제였다. 핀 하나는 못 찾았다. “룰인데 지켜야지요.” 그 수모까지 소크라테스의 죽음처럼 미담으로 소개됐었다.

이렇게도 말한다. 이정미는 실수였지만 박근헤는 의도였다. 헤어롤을 깜빡한 해프닝은 아름답게 채색되지만 탄핵이 기각됐더라면 개념 없음의 증거물로 매도당할 뻔했다. 둘의 헤어스타일 비교 논문도 나올 만하다. 실제 '여성 정치인의 외적 이미지 지각 실태와 기대 이미지 연구'에서는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비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패션 및 헤어스타일 분석'이라는 논문도 쓰였다. '박근혜머리'는 취임 초기 혼주 화장으로 인기를 끌었다.

지금은 추락한 인기와 무관하게 과잉 해석되고 있다. 삼성동 자택 출장 메이크업이 계속되자 “혼자서는 머리도 못 감네”라는 추측이 무성하고 사저정치에 시동 거는 정치 신호로 해석된다. 비극의 여왕이 된 지금, 의전 자본을 지킨다는 오해가 있다면 그것마저도 자연인 박근혜의 몫이다.

요즘 생각나는 여성들이 있다. 기생으로 오인받지 않으려고 화장을 엷게 하고 복숭아색 분이 나오자 흰 분을 바른 조선 여인들이다. 더 이상은 조선시대가 아니고 화장을 담장으로 하든 염장으로 하든 자유다. 올림머리나 내림머리나 한 개성이다. 40년 이상 일관된 올림머리는 여론조사 20% 안팎의 고정표라는 정치적 자산인데 집착을 어찌했겠는가. 나라를 우스꽝스럽게 만들지 않았으면 왕비처럼 대수머리에 용잠을 꽂아도 이렇게 시비했겠는가.

패션 정치는 그러나 외화내빈의 정치, 비정상적인 시스템 운영의 상징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또 선의, 배신, 사익 버전으로 혐의를 전면 갈아엎고 22일 아침 귀가하는 전직 대통령은 국민을 공허하게 한다. 파면되고도 올림머리는 끊이지 않고 정치적으로 해석되니 그 머리카락에 무엇이 더 있는지 알 길은 없다. 물론 그런 것들이 용납되려면 최소한 국정농단은 안 했어야 했다. 그랬으면 얹은머리나 땋은머리, 쪽찐머리를 하건 크게 상관하지 않았을 것이다.

최충식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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