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 판사는 “기본권 보장을 위한 대안 마련이 필요하고 그것이 가능한 데도 국가가 아무런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양심에 따른 예비군 훈련 거부자에게 형사처벌만을 감수하도록 한다면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를 부당하게 침해하는 결과가 된다”며 유씨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병역 거부자의 양심의 자유와 병역의무 이행의 형평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기 위한 유력한 대안은 대체 복무제”라며 “특히 예비군 복무는 약 2년간의 현역 복무와 비교할 때 매우 가벼워 형평성 있는 대체 복무를 설계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렇게 양심에 따른 예비군 훈련 거부자에게 무죄가 선고된 사례는 2004년 서울 남부지방법원에서 단 한 차례 있었는데, 13년 만에 다시 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한편, 종교적인 이유로 군 입영을 거부한 병역법 위반자에 대한 무죄 판결은 이보다 많아 2015년 5월 이후 15건 정도나 되며, 현재 대법원에 계속 중인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만도 40여 건에 이른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종교적 신앙이나 개인적 신념 때문에 군 복무를 거부하는 것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이를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징병제를 유지하는 83개국 중 대만과 덴마크, 독일, 러시아, 이스라엘 등 31개국이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고 있으며, 유엔 인권이사회 역시 양심적 병역거부로 인한 갈등 해소를 위해 대체 복무제 도입을 권고하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처벌은 일반 국민 사이에서도 찬반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는데,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에서는 주로 우리나라가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을 이유로 든다. 정부 역시 북한과 대치 중인 특수한 안보 상황 때문에 병역에 대한 의무 부과가 평등하게 이뤄져야 하고 이를 회피하는 행위에는 강력한 제재를 가할 수 밖에 없다는 태도이다..
양심적 병역거부자에 대한 형사 처벌에 대해 2004년 첫 합헌결정을 내린 헌법재판소 역시 “양심의 자유가 중요한 기본권이지만 국가안보라는 중요한 공익을 저해할 수 있는 무리한 입법적 실험(대체 복무제)을 요구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으며, 헌법재판소는 2011년도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반면 찬성론자들은 현역에 필요한 자원이 남아 6000여 명이 보충역으로 전환되는 현실에서 한 해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대략 600여명 정도 임을 고려하면 대체 복무제를 도입해도 병역 자원 손실이 크지 않으며, 대체 복무의 강도를 현역보다 더 무겁게 설정하고, 전문가들에 의한 엄격한 사전심사와 사후관리 및 엄격한 처벌 제도를 마련하면 양심을 빙자한 병역 기피자 양산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대만의 경우 2000년에 대체 복무제를 도입하면서 병역기피 현상을 우려해 대체 복무 기간을 현역 기간보다 11개월이 긴 2년 9개월로 정했다가 부작용이 나타나지 않자 대체 복무 기간을 점차 줄여 지금은 현역 기간과 같게 조정했다고 한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도 2007년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에게 현역병보다 두 배 많은 기간 한센병원, 결핵병원, 정신병원 등에서 근무하면 병역을 이행한 것으로 간주하는 구상을 내놨다가 국민적 공감대를 얻지 못한다는 이유로 흐지부지된 적이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로 2015년도에 실형을 선고받은 남성 3명이 또다시 헌법소원을 제기해 병역법 조항은 세 번째로 위헌 심판대에 오르게 되었고, 헌법재판소는 조만간 이에 대한 결정을 내릴 예정이라고 한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가치관과 판단 기준이 변했고, 인권 의식 역시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에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법리 기준도 재논의가 필요한 시점으로 보인다.
비근한 예로 간통죄의 경우를 보더라도, 무려 4차례나 헌법재판소로부터 합헌 결정을 받아 철옹성처럼 느껴졌지만 2015년 2월 마침내 위헌 결정이 내려지고 말았다.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양심적 병역거부와 대체 복무제에 대해서는 국민 사이에 찬반 의견이 팽팽하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만큼, 이에 대한 논의는 헌법재판소가 아닌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찬성하든, 반대하든 전 세계에 양심적 병역거부로 수감된 젊은이의 90% 이상이 대한민국의 교도소에 있는 현실에 대해 어떤 식으로든 해결의 실마리를 풀어야 할 것이다.
조성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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