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 사진은 기사 내 특정사실과 관계없습니다./출처=국민안전처 |
프란치스코 교황이 기독교도로써 책임을 다하지 않는 사람들을 향해 또 “위선적인 신자는 무신론자만 못하다”고 날카롭게 질책성 메시지를 던졌다. 교회와 기독교인이 늘어날수록 더 흉악해지는 세상을 일깨우기 위한 참회의 권고이며 위선적 사랑에 대한 무서운 경고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장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은 누구나 남을 위해 봉사해야한다”고 강조하며 늘 낮은 자세로 사람을 대하신다. 아르헨티나에서 가난한 철도노동자의 아들로 태어나 온갖 고난을 물리치고 최초로 남미출신 교황이 되셨다. 예수 이후 가장 예수다운 의인이며 유달리 대한민국을 사랑하신다.
세월호 참사로 혹독한 고난을 겪고 있을 때 머뭇거리지 않고 찾아와 “인생이란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넘어진 것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넘어졌으면서도 그곳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것이다”고 크게 위로해주셨다. “삶의 발코니에서 관망하지 말라”며 도전하는 인생이 진정한 삶이라는 교훈으로 용기를 북돋으셨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은 우리에게 국민주권과 법치주의라는 민주주의 대원칙을 유린한 반 헌법적인 행위에 대해 책임을 묻는 것이 당연한 것임을 일깨우신 것이다.
국민이 내준 권력을 사유화해 국정을 농단한 죄로 파면된 박근혜를 지지하기 위해 태극기를 흔들고 있는 사람들을 보면 너무 참담하다. 태극기 집회의 증폭으로 태극기에 대한 혐오증과 기피증이 심화돼 대한민국의 애국심이 심하게 훼손되고 있다. 맹목적 충성을 강조하거나 거짓정보를 퍼트려 분열을 책동하는 것보다 사악한 일은 없다.
진정한 忠은 간언에서 비롯되는 것처럼 비판적 충성이 애국자의 도리인지 모르고 태극기를 방패막이로 삼아 박근혜를 보호하려는 행위는 결코 올바르지 못하다. 국회의 의결과 헌재의 인용으로 탄핵된 마당에 국민에게 한 마디 사죄도 않고 진실은 곧 밝혀질 것이라며 오히려 분열을 부추기는 박근혜의 언행은 망발에 가깝다.
노년의 삶은 깨끗해야한다. 가치혼란에 빠져 시비를 가리지 않고 젊은이들 앞에서 추태를 부리는 행위를 이제 그만 멈췄으면 좋겠다. 헌법에 의거한 탄핵인용조차 불신하는 것은 인두겁을 쓰고서는 차마 범접할 수 없는 파렴치행위이다.
최순실이 인사권을 휘두르고 재벌과 결탁해 이권을 챙기도록 도와준 박근혜의 죄가 결코 작다고 할 수 없다. 아무리 남새만 맡아도 취하는 게 권력이고 냄새만 풍겨도 군침을 흘리는 게 돈이라고 하지만 태극기집회는 이제 추악함의 한계를 넘어섰다. 누구의 사주로 이 지경까지 이르렀는지 지나쳐도 너무 지나치다.
나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내 자손을 생각해서라도 이쯤해서 물러서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대주의 탓인지 성조기와 이스라엘 기를 드는 이유도 심상치 않다. 경제공황에 가까울 만큼 추락한 경제를 감안해서라도 보수집단이 각성할 필요가 있다. 대통령의 권한이 정지된 상태에서 덜컥 사드배치를 결정해 중국의 보복으로 나라꼴이 정말 말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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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력뿐만 아니라 자본도 그렇다. 재벌은 거대해지고 서민의 지갑은 오히려 메말라가는 이 나라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제를 실천하는 사람을 본 일이 있는가? 부인과 함께 샌프란시스코 임대아파트에서 살며 버스로 여행하고 변두리 식당에서 햄버거를 즐겨 먹는 아일랜드계 미국인 “찰스 F 피니”는 82년부터 35년 동안 92조 원이나 기부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바지 두 벌은 입지 않는다”며 지극히 검소하게 산다. 지난 해 말에 마지막으로 700만 달러(83억 원)를 모교인 코낼대에 기부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부자들은 베풀기보다 오히려 핥아먹으려고 안간힘을 쓴다. 최고의 재벌이라는 삼성조차 경영권승계를 위해 박근혜, 최순실에게 430억 원을 퍼주고 서민의 마지막 보루인 국민연금관리공단을 아작 냈다.
진정 나라를 사랑하고 내 후손의 안위가 걱정된다면 법과 정의를 지키는데 우선점을 둬야한다. 의롭지 않고 책임질지 모르는 사람은 지도자가 아니다. 권력의 전황과 재물을 미끼로 민심을 교란하고 권력 앞에선 무조건 머리를 조아리는 대한민국의 적폐를 하루속히 청산해야한다. 정의를 외면한 인간들에게 가장 참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더러운 권력 아래서 짐승처럼 사는 것은 죽는 것보다 못하다.
이제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적폐를 청산할 수 있는 지도자를 택해야한다. 불의에 대한 침묵은 불의에 대한 동의를 뜻한다. 지겹다고 선거를 외면해서는 절대로 안 된다. “불평등에 무감각한 채로 남아 있는 것은 빈부격차를 키울 뿐”이라고 꼬집으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우리는 또다시 제2의 박근혜를 맞아 더 험하게 당할 수도 있다.
담대히 일어나 썩어문드러진 정치판을 갈아엎지 못하면 결코 온전하게 살 수 없다. 좌든 우든 힘과 조직이 문제가 아니라 진정성과 실천의지가 중요하다. 귀에 익은 선심성 공약에 속지 말고 그들의 진정성을 꿰뚫어 봐야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노인빈곤률이 가장 높고 노인자살률이 제일 높은 나라에 살면서 노년의 삶이 청소년에게 달렸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재벌해체와 청년일자리창출, 비정규직해소에 대한 공약을 주시해야한다. 출산율이 계속 떨어지고 N포를 외치는 젊은이들의 아픔은 곧 우리의 아픔이다.
이완순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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