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우난순 기자 |
싹둑싹둑싹둑. 20여년 전, 서른을 막 넘기려는 12월 첫눈이 펄펄 날리는 어느 날 난 삭발을 했다. 미용실 주인조차 화들짝 놀랄 정도로 짧은 머리였다. 일명 ‘밤송이 머리’. 그때 난 앞날에 대해 손에 잡히는 건 아무것도 없는데다 직장생활에 대한 염증이 범벅이 돼 폭발지경이었다. 결국 그것이 머리로 터져버렸다. 삭발하고 난 후의 이런저런 에피소드는 두 보따리 쯤 될까. 제일 큰 반응은 여러분 상상대로다. “반항해?”
다음날 회사 출근했을 때 부장이 날 부르더니 아무말 안하고 어이가 없는 지 그냥 껄껄 웃기만 했다. 알고 지내는 회사 옆 은행 여직원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언니, 반항하는 거예요?”라며 머리를 저었다. 시골집에 갔을 땐 아버지가 딱 한마디 했다. “네 머리 원 참, 세상 베기싫구나.” 문제는 큰오빠네가 가게 오픈하던 날 큰오빠 장인장모가 왔는데 엄마가 날더러 옆방에서 나오지 말라는 게 아닌가. 몇시간 동안 금족령이 내려져 졸지에 갇힌 신세가 된 밤송이 머리.
헤어스타일은 사람의 이미지를 좌우한다
부모님이 기함을 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는 고릿적 얘기는 꺼내지 않더라도 보통 사람들이 보기에 내 머리는 참하고 조신한 여자가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평범하지 않은 그런 행동은 지극히 정상적이지 않은 모습으로 비춰진다. 하물며 ‘여자가’. 그만큼 사회통념은 완고하다. 2차대전 때 나치에 몸을 팔거나 애인노릇을 한 프랑스 여인들은 종전 후 머리를 빡빡 깎인 채 거리에 끌려나와 시민들로부터 돌팔매를 맞았다. 머리가 몸에서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해주는 증거다.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내 밤송이 머리에 부정적인 것은 아니었다. 1천만명 중의 한 명 정도는 아낌없이 응원해줬다. 삭발 후의 짜릿함도 있다. 영혼의 자유로움! 몇 겹의 두터운 겨울 옷을 훌훌 벗어버린 듯한 홀가분한 기분을 당신들은 알까? 속박에서 벗어난 한없이 자유롭고 시원한 사이다 맛을 아느냐 말이다.
드러머 남궁연도 한겨레 신문 인터뷰에서 외쳤다. “빡빡머리가 어때서요?” 남궁연의 빡빡머리는 곱상한 얼굴 때문인지 귀여운 소년 같다. 그러나 영화 ‘위플래쉬’에서 사이코 같은 선생 ‘플레처’로 나오는 J K 시몬스의 빡빡머리는 너무 강열해서 잊혀지지 않는다. 제자의 한계를 넘어서게 하기 위해 사정없이 몰아붙이는 음악학교 선생 플레처는 정상이 아니다. 플레처 자신 음악적 실력과 열정이 대단하다. 그 자신감이 지나쳐 제자에 대해 폭력도 서슴지 않아 가르쳤던 제자 한 명은 자살까지 할 정도였다. 그 무서운 캐릭터에 걸맞게 외모 역시 카리스마 넘친다. 그리고 멋지다. 머리카락 한 올 없는 빡빡 민 머리에 클라우스 킨스키를 연상케 하는 이목구비, 군살 하나 없는 날렵한 몸과 까만 티셔츠와 까만 바지.
정치인에게 헤어스타일은?- 안희정의 변신과 박근혜의 올림머리
헤어스타일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사람의 이미지는 많이 다르다. 머리에 공을 들이는 이유가 되는 거다. 아무리 그래도 박근혜 대통령(아니 전 대통령)이 세월호 참사 때 긴박한 상황에서 올림머리 하느라 장장 90분이나 소비했다는 사실은 용서되지 않는다. 봉두난발 하고 뛰쳐나와 진두지휘해도 시원찮을 판에 곱게 단장하고 나와 멍 때리는 소리나 하고 있었으니 참. 삼성동 사저에도 전담 미용사가 들락거리는 걸 보면 아! 박근혜에게 올림머리란?
박근혜 탄핵으로 바야흐로 ‘장미 대선’이 본격화되면서 대선주자들의 권력의지도 한층 불타오르고 있다. 그들의 욕망에 따라 헤어스타일도 변화를 보인다. 안희정의 헤어스타일은 변화무쌍하다. 안희정의 헤어스타일에서 그의 욕망이 읽혀진다. 어떤 날은 머리를 빗어 넘겨 젤로 힘을 주어 이마를 훤히 드러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이마를 앞머리로 살짝 가리기도 한다. 풋풋한 청년 이미지는 이제 없다. 숨길 수 없는 야망의 표시인가.
남자는 권력과 권위에 집착하게 되면 머리에 각을 세운다. 흔히 영화에서 포마드를 잔뜩 쳐바르고 으시대는 조폭 똘마니들을 보면 우스꽝스럽다. 어찌보면 뒷골목 양아치나 정치인은 힘있는 자리를 탐하는 동전의 양면 같은 존재들 아닐까. 정치인은 좀 더 세련됐를 뿐이다. 안희정은 사춘기 때 짝사랑하는 친구 오빠같은, 연예인 뺨치는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다. 덕분에 여성팬도 많고 대중에게 호감을 주는 이미지여서 정치인으로선 플러스 요인이다. 머리 모양에 공을 들이는 만큼 안희정의 대권에 대한 열망이 실현될 지 흥미진진해진다.
그후로도 밤송이 머리를 종종 하다 40대 초반에 한 게 마지막이다. 회사 대표가 내 헤어스타일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 머리를 하고 싶은데 아버지가 절대 안된다고 해서 못하고 있어요.” 우회적으로 내 헤어스타일을 지적한 대표의 말에 뜨끔했다. 생계가 달린 마당에 윗분의 심기를 건드릴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나중에 호호백발 할머니가 되면 또 한번 밤송이 머리를 해볼까?^^ 사족. 회사 후배 중에 열렬한 안희정 팬이 있었는데 요즘은 심드렁하다. 머리가 기생오라비 같다나 어떻다나. 우난순 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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