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영애 선문대 교수 |
정유년 춘삼월 우리나라는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안팎으로 해결해야 할 첩첩이 쌓인 난제들을 해결해야 한다. 사드배치 문제로 인한 한중 갈등, 북한 미사일로 인한 안보위기, 탄핵정국에서의 촛불과 태극기의 갈등 등 어느 것 하나 명쾌한 해답을 찾아내기가 어려운 난제 중의 난제들이다. 이런 시련의 시기에 국민들은 새로운 리더를 희구하게 마련이다.
국민들은 우리 사회를 에워싸고 있는 이런 난제들로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보다는 불안감을 더 강하게 느끼고 있는지도 모른다. 현재의 난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최선의 솔루션은 무엇일까? 어쩌면 탄핵심판의 결과에 따라 치러질 대통령 선거가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탄핵 심판과 그 이후의 분란이 그 난제 중의 하나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현재로서는 달리 묘안이 없는 것 같다.
대통령 선거를 묘안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혁신적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대통령 선거에서 우리는 늘 지도자의 리더십만을 강조해 왔다. 최근의 탄핵사태와 난제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지도자의 리더십만이 그 해결책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대단한 역사를 이룩해낸 국민의 저력에도 불구하고 세계 삼류 아니 사류쯤 되는 한국 정치 리더의 수준을 보면 한국은 국민보다는 정치 리더가 더 문제임에 틀림이 없어 보인다.
19세기의 프랑스 외교관이었던 메스트르(Josephe de Maistre)는 “어느 나라나 그 나라에 맞는 정부를 가지게 마련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국민들은 국민들의 수준에 맞는 정치 리더를 가지게 될 것이라는 의미이다. 정치 리더의 수준은 그 시대 그 국민의 수준을 반영한다. 나라가 잘못되었으면 그 정치 리더와 함께 그 국민에게도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그 나라가 잘되었다면 그 공적은 정치 리더와 국민들 모두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 리더는 나빴어도 국민만은 훌륭하였다는 논리는 지나친 비약일 수도 있겠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성을 갖춘 시민들이 존재할 때 민주주의가 가능하다.”라는 말을 했다. 이 말은 현재의 우리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할 것 같다. 민주주의란 그것을 만들어내고 지켜낼 수 있는 국민들이 있는 나라에서만 꽃필 수 있다는 것을 세계사를 통해 체감할 수 있다. 훌륭한 정치 리더 역시 그를 선출할 수 있는 안목을 가진 국민들의 나라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바라는 훌륭한 정치 리더란 초자연적 리더십을 가진 영웅이나 메시아적 지도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지난 세기를 이끌었던 처칠과 마틴 루터 킹, 간디 등의 지도자들 대다수가 그랬던 것 같다. 뛰어난 자질을 갖춘 정치 리더라 할지라도 그 리더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팔로워들, 즉 국민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리더십은 사회와 유기적으로 맞물려 단단해지기 때문이다.
신뢰하되 견제하고, 지지하되 저항함으로써 정치 리더를 연단하고 감화하는 일은 결국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다. 정치 리더를 긴장 속에서 신뢰하고 지원하는 팔로워십, 즉 ‘국민됨’이 없다면 정치 리더의 리더십은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따라서 팔로워십은 정치 리더의 리드에 따르는 온순한 양떼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정치 리더의 리더십을 곧추 세우고 그와 함께 스스로가 사자가 되는 덕목이며 자질이다.
오늘 우리의 상황처럼 감당할 수 없는 현실의 시련이 크면 클수록 그것을 구제받고자 하는 갈망도 커지게 마련이다. 이야기 속의 영웅은 작가의 필력과 상상력에 의해 탄생하지만, 우리의 영웅은 우리 국민들의 강력한 팔로워십을 통해 만들어진다. 이런 역할을 잘 수행하기 위해서 정치 리더를 향한 국민들의 분노와 절망을 드러내 보여줘야 한다. 현재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일그러진 정치 리더십이 아닌, 그것을 바로 세울 수 있는 팔로워십일 것이다. 부디 이번 대선에서는 국민들의 팔로워십을 통해 탁월한 자질과 진정한 리더십을 지닌 지도자를 찾아낼 수 있기를 바란다.
정영애 선문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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