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미 재판관과 박근혜 전 대통령/사진=연합 |
이정미 헌법재판관소장 권한대행(55·사법연수원 16기)이 13일 퇴임식을 끝으로 6년간 임기를 마무리했다. 비서울대출신, 두 번째 여성 헌법재판관에 역사상 최초로 헌재소장 권한대행을 2번이나 맡은 재판관이라는 기록에 헌정사상 첫 대통령 탄핵심판선고에서 ‘대통령 파면’을 공표한 재판관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됐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떠나는 이 권한대행은 2011년 3월 40대라는 젊은 나이에 전효숙 전 재판관(66·7기)을 이은 두 번째 여성 헌법재판관으로 임명돼 주목을 받았다.
당시 이용훈 대법원장(75·고시 15회)의 지명으로 임기 6년 동안 통합진보당 위헌정당해산 사건의 주심 재판관을 맡아 통진당 해산에 찬성표를 던졌으며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을 합헌으로 이끌었다. 그런가하면 간통죄 위헌판정에서는 합헌이라는 소수의견을 내기도 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 파면’이라는 ‘새 역사’를 쓴 이정미 재판관. 그러나 10.26사태가 없었다면 "주문,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입에서 나왔을 것이다.
이정미 재판관은 2011년 법률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학창시절 꿈이 수학선생님이었다고 했다. 수학을 좋아했던 이 재판관은 1979년 고3 때 대학입시를 앞두고 10.26사태가 그의 장래 희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과격한 시위와 혼란스런 사회 모습을 보고 올바르게 가는 길에 대한 고민 끝에 법대로 진학하게 됐고 법관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10.26사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서울 종로 궁정동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부하 김재규가 쏜 총에 맞아 숨을 거둔 사건이었다. 이 사건으로 유신체제가 몰락했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나오게 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 피격사건을 보고 자신의 꿈을 선생님에서 법조인으로 바꿨던 이정미 헌법재판관은 38년이 지나 그의 딸을 대통령 자리에서 물러나게 했다. 얄궂은 인연이다.
김은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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