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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영혼처럼 천(千)의 무봉(無鳳)으로 주옥같은 좋은 글을 써 국민적인 사랑을 받아오면서 후학들에게 많은 공감을 주고 있는 안병욱(安秉煜)숭전대학교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입언(立言)진리(眞理)하여 이렇게 정의하고 있다.
먼저 말이 서려면 진실의 말, 도리에 맞는 말, 생명력이 있는 말이어야 한다고 한다. 말이 말로써 가치 있게 서려면 무엇을 말 하는가? 누가 말 하는가? 어떻게 말하는가? 하고 묻고 있다. 말하는 주체와 자격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거짓말쟁이는 아무리 진실을 얘기해도 운운할 자격이 없고, 갈보는 순결을 말 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도둑놈은 양심을 말 할 자격이 없고, 독재자는 자유를 말 할 자격이 없고, 게으른 자는 근면을, 배신자는 신의를, 살인자는 사랑 등을 말 할 자격이 없다고 그는 설파하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말이 무척 많다. 워낙 많은 사람들이 각양 각층에서 다양하게 분포하여 살기 때문에 말이 많을 수 밖에 없는 것일지라. 그래서 사람 있는 곳에 말이 있고, 말이 있는 곳에 탈이 있게 마련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서양의 어느 철학자는 ‘침묵만큼 확실한 진리는 없고 자신의 권위 또한 상대적으로 올라가는 게 없다’고 했다. 사람들은 이를 모르고 자신의 말 만을 앞세워 상대와 주변을 압도하려고 한다. 즉 말로 한 몫을 보고, 말로 벌어먹고 살려고 한다는 것이다.
국가나 사회적으로 어려움이 있을 때는 더욱 말의 성찬(盛饌)이 가일층 심화 된다고 한다. 특히 요즈음 같은 개국 이래 최대의 난국이라는 어려운 경제난 앞에 온 국민이 우왕좌와하는 때엔 더욱 말의 성찬이 극치를 이룬다.
이렇다 보니 사회의 각 분야가 불필요한 말의 난립 아래 가슴앓이를 겪고 있다.
“내가 언제 그랬느냐? 바로 너 때문이야? 누가 그랬다드라? 이런 말이 들리더라?”
번지없이 날개달린 허황된 혀의 가시들이 우리들 주변에는 너무도 많이 부유하고 다닌다. 어찌하랴 싫건 좋건 우리는 매번 이들 말들과 함께 살아야 하는 공생공존의 위치에 있는 점이 식자(識者층)들을 딜레마에 빠져들게 하는 것이다.
사람이 살면서 말을 안하고 살 수 는 없다. 앞에서 전술한 안병욱 교수의 말처럼 진실에 말, 도리에 맞는 말, 생명력이 있는 말만이 부유하고 다니는 데야 무슨 변고가 있겠는가.
그리하여 동양의 고전으로 불리는 명심보감에서 인간사 군락을 보고 일찍이 이렇게 말했다.
“입과 혀는 화의 근원이며 몸을 망치는 도끼와 같다!”
김우영(작가·대전중구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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