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울로 베로네제 <레위가의 향연> 1573년, 555x1280 cm, 루브르미술관 |
누가 예술후원자인가?
중도일보 독자들과 만나는 소중한 시간을 ‘예술가와 후원자’라는 제목으로 대 후원자와 그 후원을 받은 예술가들의 삶과 작품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예나 지금이나 현실에서 화가는 항상 배가 고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가는 여전히 존재하고 있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그림은 여전히 문화예술의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있다.
이렇듯 예술의 업적은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후원자가 존재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술후원의 역사는 예술의 역사만큼 길다. 지금은 메세나로 통용되고 있는 후원자라는 용어는 시대와 역할에 따라 여러 변천과정을 거쳤는데 간단하게 살펴보자.
로마시대의 귀족은 그리스예술품을 열광적으로 수집하여 자신의 별장이나 도서관에 진열하기를 좋아했으니 수집가이다. 중세는 거대한 교회를 지어 건물을 온통 그림과 조각으로 장식했으니 이 경우는 주문자이다. 르네상스의 후원자는 의도하는 목적을 가지고 자기 취향의 예술가를 선택했으니 이 또한 주문자이다.
근대 이후는 예술의 공공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어 미술관이 설립되면서는 돈과 작품으로 후원한 기부자와 기증자가 생겼다. 산업시대 이후에는 개인적으로 미술을 좋아하는 미술애호가뿐만 아니라 예술의 투자 개념으로 인식하는 미술투자자도 등장한다. 이렇듯 후원자는 시대와 역할에 따라 다양한 이름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보면 문화와 예술영역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부류는 왕이나 성직자, 대귀족, 대부호 등 그 당시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르네상스나 바로크 시대에는 교황이나 왕이 주 후원자였기에 예술이나 예술가의 황금기였다.
진정한 의미의 후원자는 후원 행위에 자신의 목적(즉, 정치선전이나 부의 축적 또는 과시)을 개입시키지 않는 학문과 예술의 보호자여야 하지만 예술가와 후원자의 관계는 이 시기에는 거의 주종관계였다. 그래도 남긴 업적만큼은 어느 시대보다 뛰어났다.
지금도 다 빈치를 불변의 천재라고 한다. 그러나 다 빈치의 까칠한 성격은 대후원자인 교황 식스투스 4세를 불편하게 했다. 교황 식스투스 4세는 시스티나 성당을 짓고는 성당 안을 벽화로 장식하고자 피렌체와 로마에서 활동하는 당대 최고의 화가들을 죄다 불렀다. 그러나 누구나 인정하던 최고의 화가 다 빈치는 제외시켰다.
16세기 중반, 베네치아가 주 무대로 활동했던 베로네제는 레위가로부터 ‘최후의 만찬’을 주문 받았다. 그러나 베로네제는 주문자의 요구를 무시하고 자신의 뜻대로 그림 속에 사회의 하층민인 광대나 코피 흘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종교개혁 이후 금지되었던 독일인까지 그려 넣었다.
화가 머리끝까지 난 주문자는 베로네제를 종교재판에 넘겨버렸고 화가의 비용으로 그림을 다시 그리라는 판결이 나왔다. 비록 베로네제가 기지를 발휘하여 ‘최후의 만찬’을 ‘레위가의 향연’으로 제목을 바꾸면서 무마되기는 했지만, 주문자의 의도와 목적을 절대적으로 만족시켜야했던 예술가의 입장은 그들의 관계가 주종에 가까웠음을 보여 준다.
정경애 보다아트센터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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