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병찬 한밭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
우리나라는 비정기적인 기부자들이 대부분이다. 의식주 해결에 얽매이던 시절을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기부문화에 충분한 국민의식을 만들어오지 못했던 것 같다. 정부제도에서도 기부금을 모집할 때마다 정부 허가를 받아야 한다든지 모집비용을 모금액의 2%이내로 제한하는 현행 ‘기부금품모집규제법’은 원활한 기부금 모집에 큰 걸림돌이다. 일부 단체들은 기부금 총액이나 그 사용처에 대해 명확히 하지 않으며 이는 기부금 운영에 대한 불신을 초래한다. 미국이나 영국은 법인과 면세가 분리되어 있어서 굳이 법인이 아니더라도 비영리단체가 기부금 모집을 쉽게 할 수 있고 조세특례 혜택도 받을 수 있다.
사회발전과 경제성장에 따라 기부문화에 관심이 높아지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다. 사회복지 부문에서 전통적으로 민간의 역할을 강조해온 미국은 물론 복지국가 체계를 통해 국가의 사회복지에 대한 역할을 강조해온 유럽국가들도 늘어나는 복지재정 부담 때문에 민간재원을 확보하는 수단으로 시민들의 기부 참여를 독려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시민들의 기부문화를 활성화하고자 기부금품모집 관련법안을 수정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정부도 양극화 문제로 인한 소외계층의 복지욕구를 유연하고 신속하게 대응하기 위해 민간 참여를 적극 유도하고 있다고 한다.
오늘날 기부문화는 한 나라의 시민의식 수준을 측정할 수 있는 중요한 척도다. 기부는 세금이나 경제활동과 같이 의무나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위한 활동이 아니라 시민들의 자발적 행위로 이뤄지기 때문이다. 기부야말로 선진국과 같은 성숙한 시민의식과 참여 속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나아가 자신의 물질과 시간을 자발적으로 이웃과 함께 나누는 기부문화는 계층 간 장벽을 허무는 진정한 사회통합의 역할을 한다. 사회 전반적인 기부문화 확산은 어느 한 주체의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기부문화는 정부, 기업, 언론, 사회단체, 시민들 모두가 함께 노력할 때 가능하다. 특히, 모금 주체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전문적인 후원자 관리가 시민들의 참여를 활성화시키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정부는 기부문화의 환경조성을 위한 합리적인 법제정과 제도의 개선에 앞장서야 하며 언론은 기부문화 캠페인과 모금활동을 중요한 사명의 하나로 인식해야 한다. 기업의 경우 투명한 운영과 사회공헌활동에의 참여를 기업 윤리정신으로 삼아야 한다.
기부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모금기관의 투명성이 전제되어야 한다. 모금단체를 신뢰하지 못할 때 기부활동은 위축되기 마련이다. 기부금품모집규제법과 기부자의 정서를 고려해 모금경비와 인건비를 정확히 보고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기부자들에게 사전에 기부금 사용 용도와 모금 비용을 밝히고 허락을 구하는 게 필요하다. 이제 우리나라도 모금 비용의 사용한도가 다른 나라와 같이 15%선으로 현실화되는 만큼 모금비용과 모금액 사용을 반드시 공개하고 일정액 이상의 모금에 대해서는 공인회계사 감사를 받도록 해 운영의 투명성을 확보하는 게 바람직하다.
복잡한 경제사회에 살다보면 어느 것 하나 쉽지 않은 일이 없다.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물질보다는 인간의 존엄성을 중시하는 가치를 습득하고 나눔을 생활 속에 실천해 더불어 사는 행동을 습관화하면 된다. 대학과 학문의 발전을 위한 순수한 기부문화를 습관화하면 욕먹을 일은 더더욱 없다.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는 말을 되새겨 본다.
민병찬 한밭대 산업경영공학과 교수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