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
만약 내가 사람들 앞에서 자신 있게 “나는 파란불에 가고 빨간불에 섭니다.”라고 말을 하면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의아할 것이다. 파란불에 가고 빨간불에 서는 것은 당연한 원칙 아닌가 하고 말이다.
하지만, 우리 주위를 잘 둘러보면 빨간불에도 가는 사람이 아주 많다. 우리 스스로 생각해 봐도 얼마나 많은 순간에 빨간불에 건너고 싶었는가. 새벽 1시든 2시든,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있든 없든 신호등의 파란불과 빨간불의 약속을 지키는 것, 차량 통행이 뜸한 한적한 길을 건널 때도 횡단보도를 찾아서 건너는 일은 작은 원칙이지만 실제로 지키기는 쉽지 않다.
그런 원칙을 정해서 살다 보면 불편할 때가 참 많다. 어떨 때는 횡단보도가 너무 멀리 있기도 하고 그곳으로 가는 길이 좁고 불편하기도 하고 인도와 차도가 겹쳐서 위험한 곳도 있다.
하지만, 이처럼 파란불과 빨간불의 작은 약속을 지키는 것이 바로 원칙과 정도를 지키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의식적으로 파란불에 가고 빨간불에 서는 약속을 지키려고 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그렇게 갔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있기 때문이다. 가장 기본적인 약속을 잘 지키는 사회는 원칙과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여야 정쟁 차원의 위기가 아니라 지금 우리 사회는 여러 가지 문제로 매우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국민은 행복하지 않고 희망을 갖기 어려우며 사회 지도층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도 사라졌다.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어쩌면 우리 사회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려는 노력조차 게을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국민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중대한 결정 과정에 정부도 국회도 알 수 없었던 비선 핵심인 최순실씨가 개입한 이 허무맹랑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그 과정에 참여했던 공식적인 책임자들이 법과 원칙을 지켰다면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을 일이다.
국민의 실망과 분노는 국민이 대통령에게 위임한 주권을 국민이 전혀 알 수 없었던 듣도 보도 못하던 누군가가 자신들 마음대로 농락했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8일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 사건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수사가 종료되었고, 하루 앞선 27일에는 17차례에 걸친 박근혜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 절차가 모두 끝났다. 특별검사의 수사결과는 다시 검찰에서 이어받아 수사를 계속해야 할 것이지만, 대통령 탄핵 심판은 이번 주 중에 나올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전과 후, 대한민국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더 나은 대한민국 만들기라는 과제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다. 헌재에서 탄핵 심리가 진행되는 동안 광화문 광장을 비롯한 장외에서는 조속한 탄핵 인용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와 탄핵 기각을 요구하는 ‘태극기 집회’가 열렸다. 헌재의 탄핵판결이 어찌 나오던 간에 한쪽의 실망감과 좌절은 매우 클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헌재를 믿고 헌재의 공정한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을 떠나 어떠한 결정이 내려진다 해도 헌재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고 그 바탕 위에 대한민국이 나아갈 새로운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 길에 폭력적 대립과 증오는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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