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톡] 고차원적인 여성 질투의 매력-정읍사(井邑詞)에 나타난 여인을 바탕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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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톡] 고차원적인 여성 질투의 매력-정읍사(井邑詞)에 나타난 여인을 바탕으로-

  • 승인 2017-03-05 13:53
  • 김용복/ 극작가김용복/ 극작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을까?

나는 그녀의 얼굴도 모른다. 뿐만 아니라 그녀의 성정(性情)도 모르고 갱년기를 겪고 있는 여인인지, 아니면 갱년기를 겪기 이전의 여인인지도 모른다. 다만 시에 나타난 화자의 고백을 통하여 그녀의 아름다움에 도취 될 뿐이다.

외모 때문에? 외모는 모른다고 했다. 그녀의 고차원적인 질투가 매력 그 자체인 것이다. 어디 한 번 보자. 얼마나 매력이 넘치는가를.


달하 노피곰 도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全져재 녀러신고요/ 어긔야 즌데를 드디욜셰라.
어느이다 노코시라/ 어긔야 내 가논 데 점그를 셰라.

♣풀이
달아 높이 좀 떠서 아아 멀리 비추어 다오.(남편이 어디쯤 오고 있는가 볼 수 있게)
전주 시장에 아직도 계신가요? 아아 진 곳(주막 또는 술집 여인)에 머무를까 염려가 된다.
어느 곳이든 짐을 맡기시고 오십시오.(무거운 짐 지고 오느라 늦지 마시고 어느 곳이든 맡기고 오십시오)
내 남편이 가는 곳이 저물까 염려가 되는구나.



고등학교 교과서에는 행상(行商)을 나간 남편의 밤길을 염려하는 아내의 애절한 마음을 노래한 작자 미상의 국문 가요이며 한글로 기록되어 전하는 시가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존하는 백제의 유일한 시가로 추정된다고 가르치고 있다.

그럴 수 밖에. 고등학생들은 누구인가? 모두들 사춘기를 겪고 있는 또래의 청소년들이다. 그들에게 정읍사에 나타난 백제 여인들의 성정을 지조(志操)와 정절(貞節)이라고 규정하여 깊이 있는 매력적인 질투라고 가르칠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장 저장 떠돌아야만 하는 행상인을 남편으로 둔 여인으로 혹시 이 남자가 주막에 들려 다른 여인과 수작을 벌이지는 않을까 하는 여인네의 질투심을 오로지 일편단심 남편의 무사귀환만을 기원하는 고차원적인 여인으로 승화시켜 지조(志操)와 정절(貞節)이 뛰어난 화자임을 나타낸 심리표현이 너무 매력적이었던 것이다.

얼마나 좋으랴! 남편이 며칠씩 집을 떠나 있으니 나에게도 절호의 찬스가 온 것이다. 다시 말해 개방적 시간을 향유할 수 있는 시간이 왔으니 말이다. 그러나 그녀는 남편의 무사귀환을 바라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고차원적인 질투심을 아름답게 승화시킨 시적화자야말로 인간의 본능과 감성적 욕망을 극복한 여인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사랑과 도덕이, 그리고 멋들어진 낭만과 지성이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어낸 인내심의 극치인 것이다.

장에 떠도는 남편은 주머니 속에 동전이 얼마인가는 들어 있을 터. 더구나 객지를 떠도는 남정네이니 여인의 품이 왜아니 그리우랴?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시적화자는 머리끝까지 의심이 미칠 것이다. 그러나 화를 낼 수 없다. 대상이 눈앞에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여인은 본능과 현실적 도덕성 간의 근원적 양면성이 동시에 내재돼 있는 여인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갈등이되 의구심이 넘치는 갈등인 것이다. 그러나 질투는 할 수 없다. 칠거지악(七去之惡)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매력인 것이다.

보라, 인간 본연의 갈등을 겉으로 표출시키지 않고 절제되어 형상화한 시적화자의 기다림의 매력을. 일반 고대가요에 드러난 여인들의 질투나 시기심과는 차원을 달리한 믿음을 바탕으로, 그러나 애절한 기다림을 노래하고 있다는데서 미적 가치를 찾아볼 수가 있는 것이다. 여인의 시기와 질투심을 그리움이나 기다림으로 아름답게 승화시켜 밤하늘에 높이 떠있는 보름달에 호소하는 지적인 매력!

만약 이런 여인네가 갱년기에 이르렀을 때에도 그 아름다운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인가 염려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염려하지 말라. 이 여인이야말로 마음속 깊은 곳에서 표출되는 의구심을 천지신명께 하소연함으로 오히려 남편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승화시키는 고차원적인 마음을 지닌 여인이기 때문이며, 일반 남정네들의 눈으로는 이런 여인을 발견할 수 없을 터이니 말이다.

사랑하고 싶은 여인. 그 지고지순(地高至純)한 사랑을 독차지 하면서 그를 영원히 사랑하며 호위무사가 되어 지켜주고 싶은 여인. 참으로 이런 여인 어디 없을까?

김용복/ 극작가,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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