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낙준 모세 주교ㆍ성공회 대전교구장 |
그런데 최근 우리들이 그런 밥에 대해 겸손하기보다는 거만해지는 모습을 종종 봅게 됩니다. 텔레비전에서 요리프로그램 방송시간이 많아지는 것을 보면 밥에 대한 인간의 탐욕(貪慾)이 강해졌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음식에 대한 자제가 약해지는 것만 아니라 식탐(食貪)은 어느덧 미덕(美德)이 되었습니다.
기독교 경전인 27권의 신약성경 가운데 13권의 저자인 사도 바우로(St.Paul)는 남자 어르신을 비롯해 젊은 여성과 젊은 남성이 모두 지녀야할 공통점으로 '자제력(自制力) 있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지금은 특별히 밥에 대한 자제력이 많이 요구되는 시대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자제력을 깊이 훈련하는 기간을 일컫어 '사순절기'라고 부릅니다. 사순절기의 끝이 부활절이기에 부활 전의 40일 간을 가리켜 사순절기라 합니다. 40일 간의 고된 훈련을 통하여 새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사순절기가 가진 목적입니다.
즉, 밥에 대하여 자제력이 없고 식탐이 강한 사람이 밥에 대하여 자제력이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는 것이 사순절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가장 어두운 심성이 어떤 종교적인 언어와 행위의 반복을 통해 최고의 은총(恩寵)을 받음으로써 질적으로 다른 심성으로 바뀌어진다는 것입니다. 사순절기는 '권력'에 기초한 혁명이 아니라 '사랑'에 기초한 혁명으로 인간이 이행하기를 바라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권력에 기초한 혁명은 숨막힐 듯 짜여진 틀 안에 인간을 머물게 하지만, 사랑에 기초한 혁명은 인간에게 해방(解放)의 향기를 풍깁니다.
그런데 탐욕으로부터 벗어나려고 하는 인간의 도전은 항상 실패로 끝납니다.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인간 자신을 구원하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신과 함께 하는 삶의 작업에서는 인간이 탐욕으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가능해 집니다. 인간의 욕망을 낮아지게 하는 삶을 세워내는 사람을 가리켜 우리는 '성인'이라고 부릅니다. 성인은 인간의 욕망으로부터 잘 견디어낸 사람을 의미하며, 인간의 욕망 그 한복판에서 선의 싹을 세워낸 사람입니다. 또한, 사순절기는 모든 인간이 이런 의미의 성인이 될 수 있다는 믿음과 가능성을 가진 시기입니다. 이마에 재를 바르고 '인생아, 기억하라.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돌아가리라'라고 외치시는 소리가 우리의 귀를 통해 심장까지 떨리게 하면서 사순절기를 시작합니다.
탐욕은 자신의 인생을 깊이 생각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탐욕을 낮아지게 하는 작업은 인생을 진지하게 생각하게 만듭니다. 말없음의 반복이 침묵이라면, 그 침묵은 어둠에서 빛을 나오게 합니다.
식탐으로부터 시작하여 권력에 취하여 사는 사람과 남으로부터, 사회로부터 인정받기를 바라며 쉼이 없는 바쁘게 생을 산 사람, 그리고 태어나서 한 번도 진지해 본적이 없는 교만한 사람이 자제력 있는 사람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그 이행이 이뤄지는 올해의 사순절기이기를 기도합니다.
유낙준 모세 주교ㆍ성공회 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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