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 여행] 안동 조탑리 아동문학가 권정생 생가·동화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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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여행] 안동 조탑리 아동문학가 권정생 생가·동화나라

아이들의 행복 꿈꾸던 가난한 삶과 희망이 이 곳에

  • 승인 2017-03-02 11:56
  • 신문게재 2017-03-03 9면
  • 임병안 기자임병안 기자
▲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빌뱅이언덕 아래 자리한 권정생 작가의 흙집.
▲ 경북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 빌뱅이언덕 아래 자리한 권정생 작가의 흙집.

아동문학가 권정생(1937~2007년)을 뵙고 싶다는 생각에 안동시 일직면 조탑리를 지난달 25일 찾았다.

'몽실언니', '빌뱅이언덕', '우리들의 하나님'에서 작가 권정생을 알았고 그의 삶이 내 삶에 들어왔다. 가난과 전쟁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은 '몽실언니' 이야기에서 슬프지만, 절망적이지 않은 삶을 발견할 수 있었고, 지금 책에서 느낀 위로가 필요했다.

중앙고속도로를 이용해 2시간 남짓 걸려 남안동톨게이트를 빠져나와 빌뱅이언덕에 도착했다.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5층 전탑(보물 제57호)이 있어 조탑리라는 이름이 붙여진 마을 입구에 차를 두고 천천히 걸어 들어간다. 층층이 돌을 쌓고 황토를 발라 만든 돌담길이 먼저 맞이해줬다.

버려진 개똥이 빗물에 자신의 몸을 녹여 민들레의 꽃을 피워낸다는 강아지똥의 동화가 생각났다. 동화 속에서 돌이네 흰둥이가 똥을 눈 자리가 여기 어디쯤 되겠거니 그런 개똥을 비웃고 떠난 참새며 낙심한 개똥을 위로한 진흙 덩어리가 어딘가 있을 것만 같다. 그리고 눈비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개똥을 측은하게 바라봤을 권정생 선생의 모습이 그려졌다.

'강아지 똥' 속 흰둥이 뛰어올 것 같은 마을 돌담길·
생쥐에 은혜 베푼 '황소 아저씨' 마구간에서 만날 것만 같아…
시린 손 비비며 울렸을 교회 종탑부터 임종 때까지 가난한 삶 실천한 토담집까지,
때묻은 어른들이 다시금 동화같은 순수함 느낄 수 있어



▲ 조탑리마을 고샅에 돌담길이 보인다.
▲ 조탑리마을 고샅에 돌담길이 보인다.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몸을 녹여 네 살이 될게.”

-'강아지 똥' 중에서.

조탑리 마을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권정생 선생이 숨지기 전까지 창작생활을 한 생가가 있다. 붉은 슬레이트 지붕의 토담집. 울도 담도 없으니 대문이 있을 리 없다. 빌뱅이언덕의 8평짜리 흙집이다. 교회 종지기로 살던 권정생을 위해 마을 청년들이 지은 것으로 작은 방 두 개로에 화장실이 전부다. 문이 있는 방에는 식사나 손님을 접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두어 사람이 앉으면 꽉 찰 정도이고, 안쪽으로 있는 또 하나의 방은 책들의 공간이었다. 겨우 한 사람 누울 공간에서 권정생 선생은 잠을 잤고 글을 썼으며 생각했다.

문이 잠겨 있어 들어갈 수는 없지만, 앉은뱅이 책상에 영정사진과 향이 올려져 있었다. '뺑덕이네'라는 이름표가 붙은 개집도 그대로였고, 평소 그가 앉아 주변 생물을 관찰했을 섬돌도 제자리에 있었다. 즐겨가꿨다는 밭에는 관람객들이 밟지 않도록 줄이 늘어져 있었다.

'권정생' 마분지에 손으로 눌러 쓴 이름이 이곳이 그의 집임을 알리는 유일한 문패였다. 내 집 한 칸 없이 가난으로 고생만 하다 간 부모를 위로한 상징이기도 하다. 생쥐들 식량 삼아 처마 밑에 매달았다는 옥수수는 보이지 않고, 숨을 거두기 전에 심었다는 포도나무도 찾아볼 수는 없었지만, 권정생 선생이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밖을 내다볼 듯 하다. “그것들도 다 생명이 있고 의미가 있어 이 땅에 온 것입니다. 절대 베지 마세요”라며 마당에 풀을 베어내지 못하게 했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 권정생 선생이 16년간 종지기로 지낸 일직교회 종탑 모습.
▲ 권정생 선생이 16년간 종지기로 지낸 일직교회 종탑 모습.
그는 이곳에서 가장 왕성한 창작활동을 했다. 결핵균이 퍼져 콩팥과 방광을 들어내고서 옆구리에 연결한 오줌주머니에 수시로 피고름이 흘러나오고 송곳으로 찌르는 듯 되풀이되는 고통 속에서 글을 썼다. 그래서 고 이오덕 작가는 “다른 사람은 잉크로 글을 쓰지만, 권정생은 피를 찍어서 글을 쓴다”며 권 작가의 글이 출판돼 빛을 보도록 발로 뛰었다.

권정생 선생이 자주 올라 생각에 잠겼다는 집 뒤편에 빌뱅이언덕에 올라본다.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면서 그가 1968년부터 16년간 종지기로 살면서 '강아지똥'을 완성한 일직교회도 가까웠다.

동화 '엄마 까투리'에 까투리 새끼들이 이 어디 가에서 엄마 품을 그리워했겠거니, 또 어느 추운 겨울날 먹이를 찾아 나선 생쥐와 커다란 황소 아저씨가 따뜻한 마음을 나눈다는 동화 '황소아저씨'의 마구간도 어디쯤 있을지 상상해본다.

“어른들은 담을 쌓고 등을 돌리고

어른들은 높은 자리가 좋다고 하지만

사람을 부리는 게 좋다고 하지만

애들아, 우리는 어른들을 닮지 말자(중략).”

'애들아 우리는' 중에서.



동화작가로 여러 상을 받은 그가 끝까지 흙집에서 살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권정생 선생이 생존했을 당시에도 많은 기자가 불시에 찾아와 이런저런 물어대는 것을 싫어하셨다던 그였다. 다만, 그의 책에서 답을 추정해본다.



“예수님이 만약 화려한 옷을 입고 고급주택에 살며 고급승용차에 경호원을 데리고 나타났다면(중략), 예수님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가장 소박한 인간으로 우리 곁에 33년 동안 고락을 함께 해준 삶 때문.”

'당신들의 하느님'중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올바르게 사는 것이라는 철학을 끝까지 실천한 그의 삶에 고개를 숙인다. 선생의 유해는 유언대로 이 언덕에 뿌려졌다.

고샅길을 따라 일직교회를 찾는다. 이 교회 예배당 문간방에서 1967년부터 빌뱅이언덕 흙집을 지어 이주한 1982년까지 종지기로 지냈다.

교회 종탑에 기다란 줄을 당기며 새벽 예배시간을 알렸고, 주일 찾아온 아이들에게 이야기 선생님이 되기도 했다.

▲ 권정생 생가에 앉은뱅이 책상 위에 영정이 모셔져 있다.
▲ 권정생 생가에 앉은뱅이 책상 위에 영정이 모셔져 있다.
“겨울이 되면 아랫목에 생쥐들이 와서 이불 속에 들어와 잤다. 자다 보면 발가락을 깨물기도 하고 옷 속으로 비집고 겨드랑이까지 파고들어오기도 했다. 처음 몇 번은 놀라기도 하고 귀찮기도 했지만, 지내다 보니 그것들과 정이들어 아예 발치에다 먹을 것을 놓아두고 기다렸다.”

수필집 '우리들의 하느님' 중에서.

그는 교회 문간방에 오기 전에는 나무장수를 하고 고구마를 캐어 장에 내다 팔았으며, 부산에서 재봉틀가게 점원이기도 했다.

▲ 권정생 선생의 친필원고가 전시돼 있다.
▲ 권정생 선생의 친필원고가 전시돼 있다.
열아홉에 결핵에 걸려 생사를 오갔으며, 동생 결혼에 짐이 안 되려 집을 나가 완전한 거지가 되었을 때의 삶은 시 '딸기밭'에서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다.

“(중략)바위 벼랑 위로

흘러가는 구름이

자꾸 눈앞을 어지럽힙니다.

어머니

배가 고픕니다.” '딸기밭' 중에서.


그가 살았던 문간방은 남아 있지 않지만, 종탑은 재연해놨으며, 방문객들이 직접 줄을 당겨칠 수 있다.

이어 권정생 선생의 삶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권정생의 동화나라'라는 문학관을 찾았다. 생가에서 1.5㎞ 떨어진 곳에 있는 옛 일직남부초등학교를 다시 꾸민 것으로 이곳에는 친필원고, 유언장, 일기장이 남아 있고 그의 책을 마음껏 읽을 도서관이 있다.

만약에 환생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 25살 때 2~3살 어린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던 그, 세상에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때는 환생을 그만둘 수 있다던 권정생은 이미 어른들 가슴에 순수한 거름이 되었다.

임병안 기자 victoryl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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