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지연 우송대 외래교수 |
그녀가 언론의 자유를 강조하면서 사용한 단어 하나가 내 귀에 꽂혔다. “파운더(our founders)”. 소위 건국의 아버지들이다. 광의의 파운더 범주에 공화당 출신은 빠지고 민주당 출신만 들어간다든가, 꼭 그럴 것 같진 않다. 여기에서 스치듯 거론된 '파운더'란 국가를 세워나가는 과정에 수반된 모든 갈등(예를 들어 미국의 독립과 강한 통합을 위해 언론을 억압한 입장이든, 또는 그것에 저항한 입장이든) 말하자면 그 정반합의 (흑)역사를 애정껏 끌어안아 거칠게 뭉뚱그린, 자부심과 자기긍정에 기반한 표현에 가깝지 않을까. 그녀는 이주민의 역사, 이민자의 나라라는 미국의 파운더들이 물려준 정신을 근거로 대통령을 비판한 것이다. 이미 마련된 파운데이션을 받아들이고 존중할 줄 아는 건강한 관점의 체화가 인상적이었다.
한국의 파운더는 누구일까? 대통령만 파운더인 건 아니지만, 건국 대통령은 당연히 파운더에 속한다. 사실상 한국은 파운데이션을 갖추어온 지 100년도 되지 않은 나라다. 멀리 보면 지금 우리도 파운더일지 모른다. 굳이 통일을 끌고 오지 않아도, 경제 발전 및 민주화의 제도적 완성이라는 물적 토대 건설을 넘어서, 이제야 개개인의 내면적, 정신적 성숙과 한국의 정체성 탐구라는 새로운 질적 과제를 부여 받은 최후의 파운더들이 오늘날의 한국인이다.
메릴 스트립의 스피치는 '할리우드론'에서 '배우론'으로 유려하게 넘어간다. 배우는 타인의 삶에 들어가 그 느낌을 관객도 함께 느끼게 하는 게 일인 사람이다. 공감이 직업인 셈이다. 그녀는 그런 배우의 특권에 대해 말한다.
한국인들은 '특권' 같은 단어를 자기정당성 확보를 위해서는 잘 쓰지 않는다. 겸손의 제스처로 과분한 특권을 운운하는 경우는 있어도, 논쟁적이고 공격적인 메시지에는 붙이지 않는 것 같다. 특권을 인정하면 자신이 나쁜 강자임을 인정하는 꼴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불리해진다. 강자는 대부분 나쁘고, 나는 늘 착한 약자여야 한다. 그러나 메릴 스트립은 본인을 약자로 위치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에게 특권과 책임이 있음을 알고 있기에 이런 이야기를 해야만 한단다.
한편, 대중과 소통하는 문화예술인으로서 자기 몫에 대한 고민은 없고, 대세에 편승해 분풀이 소리나 지르는 소영웅주의를 보고서는 '개념 연예인'이라며 환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메릴 스트립의 수상 소감을 보고 마냥 멋지다고 부러워하는 이들과 꽤 겹치리라 짐작한다.
하지만 둘은 다르다. 보통은 비슷한 계열의 용감한 소신 발언 정도로 여겨지지만, 분명 수준도 다르고 가치관도 다르다. 섬세하게 차별되고 구별돼야 한다. 그녀의 스피치에서 정말로 짚어 보아야 할 점은 '파운더'나 '특권' 등의 언어를 통해 드러나는 한 미국 원로배우의 강인한 자기인식이다. 후배들의 가정환경까지 정성들여 써온 원고는 그녀의 정치관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든 본받을 만한 성숙한 책임감의 발로인 것이다.
만약 내게도 '대한민국 최후의 파운더'라는 특권이 있다면 어떤 책임이 따라올까. 물려줄 정신이 있는가. 결혼하기도 어렵고 자식 낳기도 버거운데 물려줄 정신이 뭐가 중요하냐 반문하겠으나, 결혼과 출산에 대한 인식 등 젊은 세대가 현재 스트레스 받는 온갖 요소들과의 정면대결을 통해 그 정신도 만들어질 것이다. 미우나 고우나 선배들이 몸부터 급히 키우느라 부족했던 것들을 보듬고 채우고 개선할 몫은 우리에게 있다. 그것이 라스트 파운더의 미션이다.
송지연 우송대 외래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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