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신동엽은 '압록강 이남'에서 질타했다. “평화를 사랑하는 조국 조선 사람아. 너는 어찌하여 다 같이 조선말을 하는 얼굴 속에서 원수를 찾아내어야 하며, 형제와 애인의 인연에 탄약을 쟁여야만 하느냐. 애인아 누나야 조선 사람아. 너는 누구를 위해 누구에게 어제도 오늘도 방아쇠를 댕기는 것이냐.”
유령처럼 떠돌며 사회를 혼란케 하는 내란과 혁명이라는 말에는 신동엽 시인이 말한 평화를 사랑하는 대한민국 사람의 본성을 거부하는 사악한 세력의 비수가 담겨있다. 그럼에도 양쪽 광장에 선 사람들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 광장을 둘러싼 거대한 빌딩 밀실에서 두 광장을 지켜보며 계산기를 두들기는 사람들이다. “메시아가 왔다”는 풍문을 만들고, 팔면서 광장 사람들을 '이념의 사투리'로 눈과 귀를 가리는 사람들이다. 광장의 갈등을 만들어낸 진범들의 실체이다.
이 폭풍의 시간이 지나면 광장의 사람들은 과거 역사가 보여주듯 망각 속에서 다시 잠시 휴전한다. 광장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의 일용할 양식이나, 생존을 지켜주지 않기에. 또 양쪽 밀실 사람들도 불의에 대한 분노가 광장에 퍼질 때의 힘을 너무 잘 알기에 광장으로 유혹하지 않는다.
시인 김수영은 4·19혁명 이후에 탄식했다. “불쌍한 것은 이래저래 그대들뿐이다. 그놈들이 배불리 먹고 있을 때도 고생한 것은 그대들이고, 그놈들이 망하고 난 후에도 진짜 곯고 있는 것은 그대들인데, 불쌍한 그대들은 천국이 온다고 바라고 있다. 그놈들은 털끝만치도 다치지 않고 있다.” 그것이 내란과 혁명이 지난 뒤의 변함없는 보통사람의 삶이다.
그래서인지 시인 신동엽은 단호히 노래한다. “싸우고 싶은 자 저희끼리 싸우게 하고 독존하고 싶은 자 철창 속에 독존케 하라. 투구를 쓰고 싶은 하는 자 쇠항아릴 만들어 깊숙이 쒸워주라. 영웅이 되고파 서두르는 자 로케트에 매달아 대기 밖으로 내던져버리라.” 이 이상 더 무엇을 말하랴.
역사는 교훈을 준다. 독설과 살의로 문제를 해결한 경우는 없다. 또 한 순간에 적폐를 청산한 사례도 없다. 오랜 시간과 엄청난 희생과 노력이 따른다. 적폐가 무엇인지 아는 것이 첫걸음이다. 밀실에 호시탐탐 국민을 이용하는 세력, 님비·핌비 집단, 공익을 사유화하는 세력,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훼손시키는 세력들, 책임과 의무를 외면한 사람들, 불평등한 제도와 불합리한 규제, 다양성을 파괴하는 독선 등이 적폐가 아닐까. 찌든 때가 너무 많다. 모든 영역에 퍼져 있다.
적폐 청산은 이 시대의, 우리의 몫이다. 민주주의라는 말이나, 태극기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우리끼리 싸운다면 적폐 세력이 환호할 일이다. 광장에서 한 걸음 물러서자. 껍질끼리, 밀실 사람들끼리 싸우게 두자. 우리는 삶의 현장에 있는 적폐를 극복할 구체적인 행동을 하자. 작은 적폐가 결국 사회의 암덩어리의 본체이다.
강대국들이 야수의 눈으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북에는 김정은도 있다. 1914년 사라예보에서 발생한 총성 한 발이 수많은 사람들을 사지로 내몰았다. 지금 이 순간이 바로 그 순간이다. 민족의 생존이 백척간두에 있다. 조금 더 냉정해지자.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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