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벌레와 메모광/정민 지음/문학동네/2015 刊 |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 부분은 옛날 책을 둘러싼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장서인 이야기, 책벌레를 막기 위한 은행잎 이야기, 그리고 돈을 받고 남의 책을 베껴 써주는 '용서傭書' 이야기 등이 나오는데 이러한 내용을 한국, 일본, 중국 세 나라를 비교하며 보여주는 부분은 우리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우리의 모습을 보는 듯해서 흥미롭게 읽어 내려갈 수 있었다.
이런 이야기 속에는 조선시대 정조의 총애를 받은 책벌레 이덕무가 단골로 출연한다. 엄격한 신분제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서얼출신으로 태어난 이덕무는 어머니와 시집간 누이가 영양실조와 폐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나고, 사흘을 굶다가 책을 전당포에 맡기고 쌀로 바꿔와 굶어죽기를 면할 정도로 지독히 가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곁눈질하지 않고 열심히 공부하고 책을 읽었다.
이덕무의 책에 대한 사랑은 그의 「간서치전 看書痴傳」, 즉 「책만 보는 바보이야기」라는 글에도 잘 표현되어있다. “어려서부터 스물한 살 때까지 하루도 고서를 놓은 적이 없다. 한 번도 못 본 책을 보면 너무 기뻐 웃었다. 집안 식구들이 그가 웃는 것을 보고 어디서 또 기이한 책을 구해온 줄 알았다”라고 쓰여져 있다. 신분적인 제약과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도 공부를 게을리 하지 않고 열심히 책을 본 그 옛날의 이덕무를 만나면서 괜스레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오로지 책을 통해서 신분제의 벽을 극복해 나가는 이덕무를 보면서 독자들은 무한한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 부분은 일기, 편지, 비망록 그리고 책의 여백에 써놓은 여러 가지 기록, 즉 메모와 관련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메모광의 대표자는 단연 다산 정약용을 들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은 책을 메모해 가면서 읽었다. 옛 책을 읽으면서 메모를 통해 자신의 학설을 가다듬었다고 한다. 다산은 메모할 때마다 그저 내용만 적은 것이 아니라 메모한 날짜, 그날의 건강상태까지 적어 두었다고 한다. 다산 정약용의 위대한 학문 뒤에는 이렇듯 체질화 된 메모의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다산 이외에도 연암 박지원의 말 잔등 위에서 작성한 메모, 이덕무의 감잎에 작성한 메모 등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읽다보면 요즘을 살고 있는 우리도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메모는 찰나의 순간에 떠오르는 생각을 기억하는데 필수적이다. 갑자기 떠오르는 좋은 생각, 아이디어 등이 그 순간을 지나치면 다시 본래대로 떠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산 정약용처럼 하루하루 일기를 쓰듯이 메모를 하다보면 소중한 기록이 본인을 성장시키는 큰 힘이 될 것이다. 특별한 형식이 있으면 더 좋겠지만 그때그때 찰나의 생각을 메모하고 정리하다보면 기대하지 않았던 나만의 능력으로 다가올지도 모르겠다.
책과 메모에 관한 몇몇의 에피소드로 옛사람들의 책과 관련된 모든 생활을 추측할 수는 없지만, 책에 대한 옛사람들의 사랑과 기록에 대한 열정은 충분히 알 수 있었다.
201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직장인 연간 평균 독서량이 9.1권이고 성인의 64.9%가 스스로 독서량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답했다. 이러한 원인으로는 시간이 없거나, 독서습관이 들지 않아서라고 답했다고 하지만, 물리적인 시간보다는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이지 않을까 싶다. 벌써 2017년 2월도 며칠 남지 않았다. 새해를 시작하며 가졌던 바램과 다짐들을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다시한번 천천히 메모해 보는 것은 어떨까?
김혜란 가수원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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