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보람 육군군사연구소 연구원, 전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파견연구원 |
둘 모두 안정된 직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생각을 묻기에 나는 솔직히 답해주었다. A에게는 ‘더 늦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고, B에게는 ‘서울이 사람 살만한 곳이 못 돼.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로스엔젤레스에 더 있으라’라고 말했다. 대번에 둘 모두의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이 드러났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두 사람 각자에게 ‘조언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냐’고 물어봤다. A는 ‘네 말이 맞을 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조언을 들으려고 한 게 아니고 그냥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거야’라고 말했다. B는 ‘로스엔젤레스에 지치고 교민들에게 상처받아서 도저히 못 살고 귀국하는 마당에 좋은 말만 해주면 좋았을 텐데 섭섭했다’고 했다.
중국의 삼국시대에 활동한 재상 제갈량은 조언의 대가였다. 어느 날 제갈량은 길을 떠나는 유비 일행의 호위 조자룡에게 ‘위기에 처하면 열어보라’면서 주머니 세 개를 건넸다. 주머니 속에는 미래에 벌어질 각각의 사건과 그것을 해결할 묘책이 들어있었다. 역시나 사건은 벌어졌고 조자룡이 열어본 주머니 속의 묘책 덕에 유비 일행은 위기를 넘긴 후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금낭묘계(錦囊妙計)의 고사다.
제갈량은 미래를 예측하여 실천가능한 대책을 세웠다. 실로 대단한 혜안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부분에 더 감탄을 했다. 처음부터 있을 일이나 대책을 말하는 대신 금낭을 준 바로 그 부분에서 말이다.
만약 제갈량이 조자룡 혹은 유비에게 직접 이런저런 일이 여차저차한 이유 때문에 벌어질 것이니, 그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설사 그것이 꼭 맞는 조언이었다 하더라도 길을 나서는 입장에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거나 ‘재수 없게 초친다’며 힐난을 듣지는 않았을까. 또 제갈량이 상세히 설명해준다고 해서 다 알아듣고 잘 기억했다가 제대로 대처했을 지도 의문이다. 만약 아예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신뢰를 잃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로스엔젤레스에서 친구들이 조언을 구했을 때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보다 현명했을까. 우선 고민을 다 들으면서 필요한 내용들을 기억해뒀다가 시간을 두고 구체적으로 답해주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머리 속에 생각난 대로 바로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궁리하였다가 가능하다면, 메모나 편지로 전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아니면 다 잘 될 거니까 걱정 말라고 격려하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지만 너는 잘 할 수 있다. 나중에 어려움에 처하거든 꼭 연락하고 함께 해결해나가자’고 말해도 좋았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이래라 저래라 답을 주는 대신, 그냥 잠자코 술이나 한 잔 더 따르고 나올 때 말없이 계산이나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남보람 육군군사연구소 연구원, 전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파견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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