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주머니를 남겨둔 지혜, 금낭묘계(錦囊妙計)

  • 오피니언
  • 사외칼럼

[공감]주머니를 남겨둔 지혜, 금낭묘계(錦囊妙計)

  • 승인 2017-02-21 11:19
  • 신문게재 2017-02-22 22면
  • 남보람 육군군사연구소 연구원남보람 육군군사연구소 연구원
▲ 남보람 육군군사연구소 연구원, 전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파견연구원
▲ 남보람 육군군사연구소 연구원, 전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파견연구원
로스엔젤레스에 출장갔을 때, 친구 둘을 만났다. 공교롭게도 A는 막 로스엔젤레스로 직장을 옮긴 상황이었고, B는 일을 접고 로스엔젤레스를 떠나 한국으로 귀국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둘 모두 안정된 직장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앞으로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고 생각을 묻기에 나는 솔직히 답해주었다. A에게는 ‘더 늦기 전에 한국으로 돌아오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했고, B에게는 ‘서울이 사람 살만한 곳이 못 돼. 섣불리 움직이지 말고 로스엔젤레스에 더 있으라’라고 말했다. 대번에 둘 모두의 얼굴에 못마땅한 표정이 드러났다.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나는 두 사람 각자에게 ‘조언을 들었을 때 어떤 생각을 했냐’고 물어봤다. A는 ‘네 말이 맞을 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조언을 들으려고 한 게 아니고 그냥 위로를 받고 싶었던 거야’라고 말했다. B는 ‘로스엔젤레스에 지치고 교민들에게 상처받아서 도저히 못 살고 귀국하는 마당에 좋은 말만 해주면 좋았을 텐데 섭섭했다’고 했다.

중국의 삼국시대에 활동한 재상 제갈량은 조언의 대가였다. 어느 날 제갈량은 길을 떠나는 유비 일행의 호위 조자룡에게 ‘위기에 처하면 열어보라’면서 주머니 세 개를 건넸다. 주머니 속에는 미래에 벌어질 각각의 사건과 그것을 해결할 묘책이 들어있었다. 역시나 사건은 벌어졌고 조자룡이 열어본 주머니 속의 묘책 덕에 유비 일행은 위기를 넘긴 후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했다. ‘삼국지’에 나오는 금낭묘계(錦囊妙計)의 고사다.

제갈량은 미래를 예측하여 실천가능한 대책을 세웠다. 실로 대단한 혜안이다. 그렇지만 나는 다른 부분에 더 감탄을 했다. 처음부터 있을 일이나 대책을 말하는 대신 금낭을 준 바로 그 부분에서 말이다.

만약 제갈량이 조자룡 혹은 유비에게 직접 이런저런 일이 여차저차한 이유 때문에 벌어질 것이니, 그때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말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설사 그것이 꼭 맞는 조언이었다 하더라도 길을 나서는 입장에서는 그다지 달갑지 않았을 것이다. ‘말이 씨가 된다’거나 ‘재수 없게 초친다’며 힐난을 듣지는 않았을까. 또 제갈량이 상세히 설명해준다고 해서 다 알아듣고 잘 기억했다가 제대로 대처했을 지도 의문이다. 만약 아예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신뢰를 잃게 되었을 지도 모른다.

로스엔젤레스에서 친구들이 조언을 구했을 때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보다 현명했을까. 우선 고민을 다 들으면서 필요한 내용들을 기억해뒀다가 시간을 두고 구체적으로 답해주는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머리 속에 생각난 대로 바로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내 나름대로 궁리하였다가 가능하다면, 메모나 편지로 전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아니면 다 잘 될 거니까 걱정 말라고 격려하는 것도 좋았을 것이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잘 모르지만 너는 잘 할 수 있다. 나중에 어려움에 처하거든 꼭 연락하고 함께 해결해나가자’고 말해도 좋았을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니면 이래라 저래라 답을 주는 대신, 그냥 잠자코 술이나 한 잔 더 따르고 나올 때 말없이 계산이나 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남보람 육군군사연구소 연구원, 전 미 국립문서기록관리청 파견연구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대전 신탄진동 고깃집에서 화재… 인명피해 없어(영상포함)
  2. 대전 재개발조합서 뇌물혐의 조합장과 시공사 임원 구속
  3.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4. [사진뉴스] 한밭사랑봉사단, 중증장애인·독거노인 초청 가을 나들이
  5. [WHY이슈현장] 존폐 위기 자율방범대…대전 청년 대원 늘리기 나섰다
  1.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 충청권 소방거점 '119복합타운' 본격 활동 시작
  3. [사설] '용산초 가해 학부모' 기소가 뜻하는 것
  4. [사이언스칼럼] 탄소중립을 향한 K-과학의 저력(底力)
  5. [국감자료] 임용 1년 내 그만둔 교원, 충청권 5년간 108명… 충남 전국서 두 번째 많아

헤드라인 뉴스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119복합타운’ 청양에 준공… 충청 소방거점 역할 기대감

충청권 소방 거점 역할을 하게 될 '119복합타운'이 본격 가동을 시작한다. 충남소방본부는 24일 김태흠 지사와 김돈곤 청양군수, 주민 등 9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119복합타운 준공식을 개최했다. 119복합타운은 도 소방본부 산하 소방 기관 이전 및 시설 보강 필요성과 집중화를 통한 시너지를 위해 도비 582억 원 등 총 810억 원을 투입해 건립했다. 위치는 청양군 비봉면 록평리 일원이며, 부지 면적은 38만 8789㎡이다. 건축물은 화재·구조·구급 훈련센터, 생활관 등 10개, 시설물은 3개로, 연면적은 1만 7042㎡이다..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 사립대 총장 성추행 의혹에 노조 사퇴 촉구…대학 측 "사실 무근"

대전의 한 사립대학 총장이 여교수를 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져 경찰이 수사에 나선 가운데, 대학노조가 총장과 이사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대학 측은 성추행은 사실무근이라며 피해 교수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고 반박했다. 전국교수노동조합 A 대학 지회는 24일 학내에서 대학 총장 B 씨의 성추행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날 성추행 피해를 주장하는 여교수 C 씨도 함께 현장에 나왔다. 선글라스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C 씨는 노조원의 말을 빌려 당시 피해 상황을 설명했다. C 씨와 노조에 따르면, 비정년 트랙 신임 여교수인 C 씨는..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르포] 전국 최초 20대 자율방범대 위촉… 첫 순찰 현장을 따라가보니

"20대 신규 대원들 환영합니다." 23일 오후 5시 대전병무청 2층. 전국 최초 20대 위주의 자율방범대가 출범하는 위촉식 현장을 찾았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마을을 지키기 위해 자원한 신입 대원들을 애정 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며 첫인사를 건넸다. 첫 순찰을 앞둔 신입 대원들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고, 맞은 편에는 오랜만에 젊은 대원을 맞이해 조금은 어색해하는 듯한 문화1동 자율방범대원들도 자리하고 있었다. 김태민 서대전지구대장은 위촉식 축사를 통해 "주민 참여 치안의 중심지라 할 수 있는 자율방범대는 시민들이 안전을 체감하도록..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장애인 구직 행렬 장애인 구직 행렬

  •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내일은 독도의 날…‘자랑스런 우리 땅’

  •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놀면서 배우는 건강체험

  •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 서리 내린다는 상강(霜降) 추위…내일 아침 올가을 ‘최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