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만필]다 함께 피어야 봄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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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만필]다 함께 피어야 봄이지요

  • 승인 2017-02-20 11:23
  • 신문게재 2017-02-21 22면
  • 정유숙 소담초등학교 교사정유숙 소담초등학교 교사
▲ 정유숙 소담초등학교 교사
▲ 정유숙 소담초등학교 교사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시국 우울증을 앓고 있을 요즘이다. 조재도 시인의 시 ‘너희들에게’에서 빌린 표현으로 ‘공부 잘해 대학 가고 졸업하면 펜대 굴려 이 나라 이 강산 좀먹어 가는 관료 후보생’들이 온 나라를 할퀴어 놓았다. 괴물 관료가 탄생할 수 있던 배경에 교육이 무관함을 주장할 수 없어 교사로서 마음이 무겁다.

그럼에도, 교육이 사회를 바꿀 수 있을 까란 물음에 치기 어린 내 대답은 ‘그렇다’이다.

학교란 무얼까. 교사란 어때야 할까. 정답 없는 물음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는 것, 교육의 본질을 찾고자 묻고 해보려는 것, 혁신교육이라는 이름의 움직임들이 그 증거이자 출발이라 하겠다. 사회를 경험하는 가장 작은 단위인 교실, 이곳에서 쌓여가는 삶의 장면과 경험이 세상을 바꾸게 되리라 기대하는 건 지나친 낙관일까. 설혹 아니라 해도 지금은 이것이 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소담초는 혁신학교를 꿈꾸는 교사들이 마음을 모아 세운 학교다. 개교준비팀 5명이 시작해 30명 가까이 늘었다가 글벗초 분리개교로 반절 줄었다. 교사 수가 변수가 될 때도 있지만, 처음에 세운 학교 철학과 원칙을 지키기 위해 애쓰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의 교육 문제를 두 가지 측면에서 조명했다. 교육이 나와 우리의 일이 아니라는 것, 교육이 삶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학교 안에서의 자기 결정권과 당사자성을 확보하는 방법을 고민했다. 또한, 학교에서의 배움이 행복한 삶을 꾸리는 바탕이 되도록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 고민을 담아 학교의 비전을 ‘홀로서기와 함께하기로 삶을 가꾸는 소담초등학교’라 삼았다.

먼저, 너무 당연해서 지나치던 모든 것을 구하고 물었다. 주어진 만큼의 것을 공적 책무성으로 해내던 교사들이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시스템 너머를 보기 시작했다. 이 당돌하고 거친 ‘너머’의 정신이 우리를 바꾸고 세우게 됐다. 기존의 교육이 우리 안의 동의를 담보하지 못하면 의심하고 거부하기도 했다. 나아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보다 승진 점수로 회유하는 제도에도 대항해 보려 했다. 순종적이고 고민하지 않는 교사가 아이히만을 길러내는 교육을 반성하고 모든 교육활동의 과녁을 우리의 철학과 원칙에 견주었다. 경계를 넘어서려는 시도와 노력은 우리 안의 지평을 넓혔고 앞으로도 자기성찰적 실천을 지속하는 힘이 될 것이다.

더불어, 관계에서 나오는 힘을 믿고 동료를 새로이 바라보았다. 각기 치열하게 살아왔던 교실 너머 우리가 함께 가고 있는지 둘러보기 시작했다. 개인의 교육관, 사회관, 교사관을 존중하되 아이들을 위해 함께 할 부분을 합의하고 조정했다. 쉽지 않은 면도 있었다. 교실이란 울타리가 주는 편안함과 익숙함이 컸다. 교사들이 하필 배구를 많이 하는 이유를 월권을 싫어하는 특성에서 찾는 뼈아픈 농담도 있지 않은가. 다른 서로를 미리 판단하고 규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묻고 구해야 할 테다. 기다려주고 손 내밀고 같이 갈 것이다. 설익고 서툴지만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것이다.

교육 안에서 나와 우리를 찾는 마지막 시선은 아이들을 향해야 한다. 아이들은 왜 학교에 다녀야 할까? 아이들은 학교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자기 삶을 꾸리고 타인을 경험하러 온다, 배울 힘을 키우고 나눌 품을 넓힌다, 소담에서 내린 답은 이러하다. 피가 가죽을 벗기는 일이라면 혁은 털을 고르는 일이란다. 혁신은 이미 해오던 것들을 한 번 더 점검하고 매만지고 다듬는 일이리라 믿는다. 처음 세웠던 철학과 원칙이 우리의 교육활동과 궤를 같이 하는지 확인하고 함께하고 있는지 둘러보는 것, 그리고 그것들이 아이들의 하루하루와 만나도록 하는 것, 자치력과 모두의 삶의 가치를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곳, 이 정도라 생각하면 혁신학교의 부담감과 무게감이 사뭇 편안해진다.

처음의 성급한 결론을 상기한다. 교육은 사회를 바꿀 수 있을까? 저마다 다른 향과 색을 지닌 각각의 꽃들. 함께 핀다면, 아니 함께 피도록 한다면, 기어이 봄은 온다고. 부단히 흔들리며 피어날 소담초도 기꺼이 봄을 부르는 한 송이 꽃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정유숙 소담초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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