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영웅' 중 한 장면 |
결혼기념일을 맞아 오래간만에 큰 맘 먹고 우리 부부는 뮤지컬을 관람했다. 뮤지컬은 일반인들이 즐기기에는 아직 고가의 문화생활이라 자주 접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이런 기념일을 빌미 삼아 일 년에 한 번쯤 즐기는 계기를 마련했다.
마침 세종문화회관에서 ‘영웅’이 공연 중이었다. 한국뮤지컬대상, 더뮤지컬어워드 6관왕, 예그린어워드 5관왕을 차지한 한국 대표적인 뮤지컬답게 관람하는 내내 대단한 감동이 물결쳤다. 1막과 2막 사이 20분정도 잠시 감정을 추스르는 시간이 없었다면 감동의 물결에 빠져 140분의 공연 내내 아마 눈물로 보냈을 것이다.
대한제국의 주권이 일본에게 완전히 빼앗길 위기에 놓인 1909년. 오직 조국의 독립만을 꿈꾸며 일제와 싸웠던 안중근의 삶.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내어놓은 그때 그 사람들의 애국심과 사형장에서 죽음을 앞두고 인간이기에 두려웠을 마음을 다잡아 나라 위해 떳떳하고 자랑스럽게 죽음을 맞아들였던 인간 안중근의 애잔함이 사람들의 가슴을 더욱 울렸다.
안중근, 그는 영웅이라 불리기 충분했다. 그리고 나라를 위해 애쓴 이들 모두가 영웅이었다.
지금부터 107년 전 1910년 2월14일. 안중근 의사의 사형 선고일.
그러나 우리민족은 어떻게 이날을 기념하고 있는가?
발렌타인 데이는 ‘발렌타인 신부'의 사형일을 추모하기 위해 일본에서 만들어진 기념일이라 한다. 그들의 깊은 속내는 안중근의사의 사형 선고일을 잊게하려고 ‘발렌타인 데이’라는 기념일을 만들었다고 한다.
우린 이날을 초컬릿이나 주고 받으며 희희낙락 즐기기만 할 일이던가?
자랑스럽게 죽어가는 아들의 수의 속에 넣어준 어머니의 편지는 아들 안중근에게만이 아닌 우리 후손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 같았다.
“네가 어미보다 먼저 죽는 것을 불효라 생각하면 이 어미는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 것이 아닌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진 것이다. 네가 항소한다면 그건 일제에 목숨을 구걸 하는 것이다!
나라를 위해 딴 맘 먹지 말고 자랑스럽게 죽어라! 아마도 이 어미가 쓰는 마지막 편지가 될 것이다. 네 수의를 지어 보내니 이 옷을 입고 가거라. 어미는 현세에서 재회하길 기대하지 않았으니 다음 세상에는 선량한 천부의 아들이 돼 이 세상에 나오거라.”
▲ 뮤지컬 '영웅' 중 한 장면 |
31살의 나이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버린 젊은 아들과 그 어머니. 모두가 자랑스럽고 우리 후손들의 가슴에 남아 나라 지키려는 마음을 굳건히 다짐하게 해주는 분들이다. 결혼기념일이라고 둘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꼭 보고 싶다고 함께 가자'던 딸을 두고 온 것이 후회가 되었다.
조국을 위해 스스로 목숨을 바친 그의 고뇌가 어떠했을까? 그의 희생으로 인하여 삼천리 조국 예서제서 독립운동의 불꽃이 타오르게 됐던 게 아닌가? 다시 시간을 만들어 아들과 딸에게 꼭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자라는 그들의 마음에 조국과 그 조국을 위해 나는 무슨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인가를 확실히 심어주고 싶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자 세종문화회관 밖 광화문에서는 대규모 집회를 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이 모습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선열들께서는 어떤 심정으로 바라보고 계실까? 안중근 의사가 목숨을 바칠 때는 우리 2천만 민족은 하나였다. 하나로 뭉쳐 조국을 위해 싸웠다.
그러나 지금 여기.
남과 북이 갈리고 영남과 호남으로 갈렸으며 그것도 모자라 태극기와 촛불로 갈라져 아우성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암담한 모습을 호국 선열들은 어떤 심정으로 보고 계실까?
내가 죽은 뒤에 나의 뼈를 하얼빈 공원 곁에 묻어두었다가 우리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반장해 달라시던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유언. 그분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도 조국만을 생각하셨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또한 마땅히 우리나라의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각각 모두 나라의 책임을 지고 국민 된 의무를 다하며 마음을 같이 하고 힘을 합하여 공로를 세우고 업을 이루도록 일러다오. 대한독립의 소리가 천국에 들려오면 나는 마땅히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이 말씀이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지금 광화문에서의 이 광경, 어찌 보고 계실까?
김소영(태민)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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