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창섭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
많은 이들이 아프지 않으면 건강하다고 믿는 탓에 건강은 관리하기 매우 어려운 것이 되었다. 잃었을 때에만 보이기 때문이다. 그때가 되어야 비로소 관리의 소중함을 절감한다. 그게 건강이다.
사람들이 세우는 신년계획 1순위는 언제나 건강이다. 건강하게 살려는 욕망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 죽음에 대해 본능적으로 가지는 공포 때문일 것이다. 그 죽음 전에 오는 단계가 바로 아픈 상태, 즉 ‘건강을 잃은 상태’이니까. 여기에다가 자본 손실의 두려움이 더해진다. 아프면 병원에 가 돈을 들여야 한다. 손해가 두려울 수밖에 없다. 건강은 ‘획득’보다는 ‘손실’이다. 건강해지라는 인사보다 아프지 말라는 인사가 더 피부에 와 닿는 이유다.
“내 자식, 불효자 안 만들려고….” 아파트 단지 내 피트니스클럽에서 열심히 운동하시는 어르신의 말씀이다. 가슴에 와 닿았다. 늙으면 죽어야 한다는 노인분들의 말씀은 거짓말이다. 나 늙었으니 더 아프지 않게 해 달라는 반어법이다. 건강보조식품 사 드리고, 몸에 좋은 음식도 대접해 드려야 한다. 인간은 건강을 욕망한다.
우리나라 국민의 평균수명은 82.1세다. 반면에 아프지 않고 사는 기간인 건강수명은 73.2세다. 아프며 사는 기간이 평균 10년이다.
특히 사회적으로 소외된 사람들의 문제다. 사회구성원으로서 마땅히 누려야 할 건강권을 제대로 누리지 못하는 이들에게 온전한 건강수명을 기대하긴 어렵다. ‘건강 불평등’ 혹은 ‘건강 소외’ 현상이다. 아니, 오히려 ‘건강 흙수저’란 표현이 와 닿는다.
인구 늘리기와 함께 기존 인구를 건강하게 관리하는 일도 국가적으로 중요하다. 향후 우리는 초고령 사회로 진입하면서 건강의 질적 하락을 경험할 것이다. 건강보험 지출도 지금과는 차원이 다른 위기를 맞이한다. 사회적 관리체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데 많은 이들이 건강관리를 개인 차원으로만 한정한다. 이게 문제다. 몸은 개인의 것이란 관념 때문이다. 그래서 아프면 개인 탓을 한다. “관리 좀 잘하지 그랬어!” 관점을 바꾸자. 건강은 사회가 챙겨야 할 영역이다. 국가가 나서서 건강을 챙겨야 한다는 프레임이 필요하다.
운동을 예로 들어보자. 개인의 의지와 상황에 맡겨두던 운동을 사회적 차원에서 생각해보자.
대전 서구에 73세 김동춘 할아버지가 사신다. 과거엔 “할아버지, 건강하게 사시려면 이 운동하시고, 음식 이렇게 드세요”라 했다. 추상적이며 무책임하다. 바꾸자. “할아버지, 서구 국민생활관 3층에 체력인증센터가 있으니 10시까지 나오셔서 체력검진 받으세요.” 할아버지의 현재 체력 상태를 점검해 드리고 운동 방법과 운동할 수 있는 집 근처 시설로 모신다. 여기에서 운동할 수 있는 운동복지쿠폰도 드린다. 구체적이며 무한책임이다. 현재 국민체육진흥공단이 시행하는 ‘국민체력100’ 사업이다. 앞으로 더 발전시킬 스포츠 복지 제도이기도 하다.
“귀하의 자녀가 5세가 되었습니다. 근처 스포츠클럽에서 무료로 수영 강습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문자 공지가 부모의 휴대전화로 왔다. 엄마는 아이를 맡긴 어린이집에 가서 현재 연계하여 운영 중인 수영프로그램을 확인하고 아이를 맡긴다. 근처 수영클럽에서 통학버스가 아이를 데려가 수영 강습을 받도록 해준다. 5세부터 초등학교 취학 전까지 국가는 아이들에게 원하는 운동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 수저의 종류와 별개로, 모든 이들이 건강과 체력 앞에선 평등하게 해준다. 좋은 국가라면, 당연히 시행해야 할 스포츠 복지는 이런 모습이다.
체력은 국력! 한 개인의 체력은 국가의 힘으로 귀속된다던 70년대 구호는 국가주의적이다. 관점을 바꿔보자. 국가는 한 개인의 행복추구권을 실현해주고, 건강한 체력을 관리해줄 토양을 마련해야 한다는 관점으로 말이다. 건강해지기 위해 먼저 필요한 것이 좋은 체력이고, 그 체력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최소의 노력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자는 뜻이다. 여기저기서 흙수저 인생을 한탄하는 작금의 현실 속에서, 적어도 체력과 건강에 있어서는 평등할 수 있다는 인식을 지금부터 만들어보자. 대한민국에 건강 흙수저는 없다.
이창섭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