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천 변호사 |
경찰이 즉각 수사에 나섰지만 목격자가 없어 수사에 난항을 겪었고, 태완이가 사망하기 전까지 남긴 300분 가량의 진술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였는데, 경찰은 이 진술이 부모의 유도신문에 의해 이뤄졌기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이후 태완이 부모와 시민단체는 이 사건의 재수사를 공개적으로 요구했으나 경찰의 재수사에도 진범은 밝혀지지 않았고, 결국 공소시효를 3일 정도 남긴 2014년 7월 4일께 태완이 아버지는 유력한 용의자로 지목된 이웃 주민을 살인 혐의로 고소했으나 검찰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불기소처분했으며, 이에 대한 대법원 재항고마저 기각되면서 이 사건은 '화성 연쇄 살인사건', 영화 '그놈 목소리'의 '이형호군 유괴살인사건' 등과 함께 영구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비록, 진범은 잡지 못했지만 이 사건은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는 전국민적인 여론이 형성되도록 하는 시발점이 되었고, 결국 2015년 7월 31자로 일명 '태완이법'(형사소송법 제253조의2, 살인죄에 대하여는 공소시효를 배제함)이 공포·시행되며 2000년 8월 이후 발생한 모든 미제 살인사건의 공소시효가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살인죄의 공소시효는 법상 원래 15년이었으나 2007년 형사소송법 개정으로 25년으로 연장됐고 다시 '태완이법'에 의해 공소시효가 폐지된 것이다.
한편, 지난달 11일 광주지법은 나주시 드들강 인근에서 여고생을 성폭행하고 살해한 혐의(강간 등 살인)로 기소된 김 모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는데, 이는 미제 강력사건 중 '태완이법' 적용으로 해결된 사건에 처음 내려진 판결이다.
일명 '나주 드들강 살인사건'은 2001년 2월 전남 나주시 드들강에서 박 모양(당시 고3)이 알몸 시신으로 발견된 사건을 말하는데, 초기에 범인을 검거하지 못해 장기 미제로 남았다.
이후 2012년 대검찰청 유전자 감식 결과 피해자 체내에서 검출된 체액이 다른 사건으로 복역 중인 무기수 김씨의 DNA와 일치해 수사가 재개됐지만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되었는데, 2015년 일명 '태완이법' 시행으로 공소시효가 폐지되면서 다시 재수사가 시작됐고, 검찰은 당시 생리 중이던 피해 여고생이 생리혈과 정액이 섞이지 않은 채 성관계후 곧바로 살해됐다는 법의학자 의견과 교도소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김씨가 범행을 은폐하기 위해 찍은 사진 등을 근거로 김씨를 범인으로 특정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공소시효를 규정한 일반적인 이유는 시간이 많이 흐르면 범죄의 증거가 사라지고, 공소시효 기간 동안에 범죄자가 숨어 지내기 때문에 처벌 효과도 있고, 피해자의 감정도 어느 정도 완화가 되기 때문인데 살인죄와 관련해서는 이러한 이유가 적용되기 어려우며, DNA 감식 등 과학수사기법의 비약적인 발달로 나중에 범죄 증거를 추가로 발견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상황이며, OECD 국가 기준으로 보더라도 반인도적인 범죄에 대해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추세가 일반적이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우리나라에서도 '잔혹한 반인륜적, 아동대상 범죄에 영구미제사건은 없다'는 원칙을 만들어나갈 필요가 있다.
폭행치사, 상해치사 등 고의성이 명확히 입증되지 않아 살인죄로 다뤄지지는 않지만 결과에 있어서는 사실상 큰 차이가 없는 중대범죄에 대해서는 당장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것이 어렵다면 공소시효를 현행보다 장기간으로 연장해야 하고, 강간치사 등 성범죄, 아동대상범죄와 같은 극악범죄에 대해서는 '태완이법'의 적용 대상을 보다 확대해 공소시효를 배제하는 방안을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더 이상 태완이 같은 피해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반인도적 범죄 전반에 대해서도 공소시효 조정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성천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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