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규모가 3천여권이나 되어 온 식구가 매달려 하루종일 운반했다. 1층 거실과 방안에 책을 쌓아놓고 서재에 정리하는데도 몇일 걸렸다. 말이 3천권이지 막상 거실과 방안에 쌓고 분류하려니 보통 일이 아니었다.
방안에 쌓인 책 한 권, 한 권 살펴보고 분류하며 책꽂이에 정리하였다. 10대에서부터 만난 책과의 인연 그야말로 50년 문학인생을 되돌아보며 만나는 좋은 기회였다. 각종 문예지와 동인지 등 다양한 장르에 걸친 문학도서들이 방안에 켜켜히 쌓였다. 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이 다시 사람을 만드는 계기를 보는 것 같았다.
▲ 청년시절의 김우영 작가 |
우선 그간 출간한 나의 저서 310권을 선별했다. 이 가운데 1984년 첫 시집 ‘푸른소나무(예림사)’를 지상에 등기 올렸다. 이어 5년 뒤 1989년 시집 ‘바람이 머무는 자리에(한누리)’를 서울에서 출간했다.
또 1990년 삶의 애환을 담은 수필집 ‘휘청거리는 술잔(대림기획)’ 이듬해 1991년 학술서적 ‘양계경영과 사육(오성출판사)’, 같은해 시집 ‘실종광고(하락도서)’와 르뽀집 ‘칵테일과 민속주(오성출판사)’ 3권을 출간했다.
다음해 1992년에 풍자적인 수필집 ‘잘났다 주당 삼총사(상원)’와 1993년 학술서적 ‘축산폐수와 처리대책(오성출판사)’, 1994년 수필집 ‘우산 속 한 몸(박우사)’, 1994년 부부공저집 ‘매화를 아내로 삼은들 어떠하리(도서출판 준)’, 1997년 산문집 ‘어느 공무원의 세상읽기(삼성출판사)’, 1997년 시집 ‘술나라 (개미)’를 세상에 선보였다.
그리고 가장 왕성한 필력의 시기 2002년에는 단편소설집 ‘라이따이한(도서출판 푸른사상)’을 출간했다. 꽁트집 ‘거미줄(월간 문학세계사)’과 같은해 연구자료 조사집 ‘우리말 산책(월간 문학세계사)’과 수필집 ‘살며 생각하며-2(도서출판 가린나무)’, 르뽀집 ‘사색의 오솔길(도서출판 가린나무)’ 등 5권을 동시에 출간하는 기엄을 토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으로 세계 지구촌과 서울 광화문, 전국이 온통 붉게 물들 때 장편소설 ‘월드컵 제1권 및 2권(푸른사상)’을 출간했다. 시기적으로 인기몰이를 위하여 대전 교보문고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 부산 서면에 교보문고 등 3개소에서 독자 펜 싸인회를 동시 개최하여 그야말로 낙양의 지가((紙價)를 올렸다.
또 자전 에세이집 '부부(하늘과 땅)’, 산문집 ‘술의 나라(문경출판사)’, 시집 ‘술나라(오늘의 문학사)’, 연구저서 ‘우리말 나들이(도서출판 예일기획)’, ‘명언 어록집(도서출판 예일기획)’ 등 한 해에 무려 7권을 출간하는 기록을 세웠다.
2007년에는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하여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 단체를 창립하여 15억 인구가 사는 세계의 지붕으로 일컫는 중국으로 진출했다.
이때 연구저서 ‘한국어 산책(중국 흑룡강출판사)’과 자전적 에세이 ‘부부- 2(중국흑룡강 출판사)’등 2권을 중국 현지에서 출판하였다. 그 당시 출판한 책이 연변 ‘신화서점’에서 지금도 판매되고 있다고 한다. 그 후 중국을 여행하면서 중국의 여러 사람들로부터 서점에서 책을 잘 보았다며 인사를 들었다.
2009년에는 자전적 에세이 ‘부부-3(문경출판사)’과 2011년 르뽀집 ‘작가가 만난 사람들(문경출판사)’, 2012년 꽁트집 ‘그니(도서출판 푸른사상)’, 2012년 연구저서 ‘한국어 이야기(도서출판 푸른사상)’, 2015년 ‘그대가 명품(도서출판 글벗)’과 ‘작가가 만난 사람들-2(도서출판 글벗)’를 출간하여 저서 30여권을 보유하였다.
▲ 김우영 작가의 책들. |
충남 서천에서 중학교 10대 시절 유치환 시인의 애창시 ‘행복’을 만났고, 가산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을 비롯하여 칼릴 지브란의 ‘예언자’와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에 ‘동방의 햇불’과 ‘키탄잘리’를 만났다.
이 시기에 내가 세계를 알게 된 것은 책에 의해서였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과거의 가장 뛰어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과 같았다. 시골에서 자라며 내가 인생을 알게 된 것 또한 사람과 접촉해서가 아니라 책과 접하였기 때문이었다.
그 후 스무살 시절 서울에 가서 각종 문학단체 활동을 하며 한국문학과 현대문학, 문학사상지, 실천문학, 창작과 비평사, 문학세계 등 다양한 문학동인지를 만났다. 또한 이를 통하여 훌륭한 시인 작가들을 만나 문학적 시각을 넓혔다.
스무살 후반 고향 충남 서천에 낙향하여 살면서 지역문학동인회에 고르게 참여를 했다. 직장 전근에 따라 만났던 충남지방 문학동인. 푸르런 서해바다가 보이는 당진에 살면서 ‘당진문학’과 ‘나루문학’에서 활동했고, 온천수의 도시 온양에 살면서 ‘설화문학’ 과수원의 고장 예산에 살면서 ‘예산문학’ 인삼의 명물 금산에 살면서 ‘좌도문학’과 ‘금산문학’ 복숭아골의 고장 조치원의 ‘연기문학’ ‘엽서문학’을 만났다.
아울러 충청지역 전반을 아우르는 충남권의 너른 문학지. 부여의 ‘사비문학’ 논산에 ‘황산문학’과 ‘놀뫼문학’ 공주시의 ‘공주문학’ ‘칠갑산의 ’청양문학‘ 대천 바닷가의 ’한내문학‘ 서산 갯마을의 ’서산문학‘ 태안의 ’흙빛문학‘과 ’태안문학‘등의 다양한 장르의 문학과 문인들을 만나며 사유(思惟)의 강을 따라 걸었다.
책을 읽을 때는 책상을 잘 정돈하고, 마음가짐을 깨끗하고 단정하게 하고, 책을 가지런히 놓고는 몸을 바른 자세로 책을 대하고, 자세하게 글자를 보며, 정독을 했다.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은 책은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지성의 매개물이었다. 좋은 책을 읽는 것은 역사에서 가장 훌륭했던 그 책의 저자들과 대화를 하는 것과 같았다. 그들과 주의 깊게 대화를 하다 보면, 그들이 가진 가장 훌륭한 생각을 공감하게 되었다.
2001년 대한민국 중부권 문화예술도시 한밭벌 대전에 정착하였다. 이곳에서 ‘대전문학’을 비롯하여 ‘호서문학’ ‘화요문학’ ‘대덕문학’ ‘중구문학’ ‘해외문화’를 만났다. 이 시기에 본격적으로 기타를 배우고, 성악을 하는 아내와 함께 부부작가 듀엣으로 활동했다. 문학, 음악, 공연, 시낭송, 전통문화 등 다양한 장르의 문화적 공간을 넘나들며 전국과 해외의 많은 문화인들과 교류하며 한층 작가적 역량을 키웠다.
10대에서부터 문을 연 헤설픈 소년문학을 시작으로 스무살 청년문학 아비투스(Habitus)로서 문학적 자아를 확립 왼손에는 겸손지덕과 오른손엔 꿈, 그 천평(저울)의 균형감각을 잃지 않고 중년을 향하여 나아갔다. 중년에는 완고한 문학사상으로 장년의 곤비함을 위하여 부단히 노력하였다.
그간의 작가활동이 국내에 머물렀다면 근래 몇 년 전 부터는 글로벌 세계화시대와 함께 한국문학의 세계화를 위해서 폭 넓게 활동을 했다.
그 일환으로 지난해 5월 중국 칭다오를 방문 제7회 한중문화교류행사를 가졌다. 칭다오에 제1호 한중문화도서관을 개관 한국어 도서 3천여권을 기증하였다.
중국에 한때 조선동포가 200만명이었다. 그런던 게 한국 바람이 들면서 조선동포 60여만명이 중국을 빠져나와 예전에 조선동포 위주였던 농촌이 이제는 한족으로 대체된다고 한다. 이에 따라 한국어가 점 점 사라져가고 한국어 도서가 줄어든다고 한다. 이 소식을 듣고 한국문화해외교류협회에서는 한국어 도서를 중국에 무료로 기증하기로 했던 것이다.
올해는 제8회 한중문화교류는 중국 엔지(연길)에 제2호 한중문화도서관을 개관하고 한국어도서를 기증한다. 또한 내년에도 독립투사의 얼이 서린 헤이롱장 하얼빈에 제3호 한중문화도서관을 개관할 예정이다.
2017년 정유년의 영롱한 새해가 밝았다. 대한민국 중부권 한밭벌 보문산 아래 문인산방에 가득찬 3천여권의 서재, 1989년 한국문단 등단이후 저서 30여권을 출간한 28년 경력의 중견 김우영 작가.
이제 이순(耳順)의 나이. 중국 공자의 논어(論語) 위정편(爲政篇)에 보면 예순살에 생각하는 모든 것이 원만하여 어떤 일을 들으면 곧 이해가 되고 곧이 듣는다 하여 나온 말이다.
책과 함께한 50년 문학인생의 작가의 길. 비록 명예가 안되고 돈이 되는 일이 아닌 외롭고 힘든 광야의 인문학 길을 가련다. 책은 인생이라는 험한 바다를 항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마련해 준 나침반이요, 망원경이요, 네비게이션이기에 말이다.
김우영(작가·대전중구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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