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완석 연극평론가, 한남대 겸임교수 |
지금 베를린의 독일국립문서보관소에는 당시 괴벨스가 작성했던 문건들이 보관되어 있는데 이 문건을 살펴보면 경악을 금치못할 여러 내용들이 담겨져 있다. 그 중 나치즘 반대 성향의 문화예술인들을 색출하여 처형 및 감금 추방, 그리고 그들의 작품 소각 등을 지시하는 내용이 구체적으로 담겨져 있다. 소위 블랙리스트 문건인 것이다.
이 암흑시대를 독일 예술인들 스스로 회상하고 싶지도, 말하고 싶지도 않은, 그래서 기록에 남기고 싶지도 않은 ‘공백기’로 비워 두기로 했다고 한다. 악마와의 거래 산물인 블랙리스트는 이처럼 일국의 문화예술을 공백기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1950년 미국 의회에서는 또 다른 블랙리스트 사건이 터져 20세기 정치사에 큰 오점을 남긴 기록이 있다. “미국 사회 곳곳에 공산주의자들이 우글거리고 있다. 그 리스트를 내가 쥐고 있다.”미국 공화당 상원의원 조셉 매카시(1908-57)는 어느 연설에서 이렇게 폭탄선언을 하였다. 당시는 철의 장막이 동유럽에 내려쳐지면서 미국과 소련의 동서 냉전이 고조되던 초긴장의 시기여서 미국내 소련의 스파이 같은 공산주의자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메카시의 주장은 미국 전체를 발칵 뒤집어놓은 것이다.
그로부터 5년 동안 미국은 매카시즘이라는 용어로 혼란에 빠지게 된다. 특히 매카시가 수집한 소위 블랙리스트에는 미국이 자랑하는 문화예술계 유명인사들의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그 중에는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 오토 클렘페러, 극작가 브레히트, 영화감독 오손 웰스, 루이스 부뉴엘, 찰리 채플린, 시인 알렌 긴스버그, 소설가 토마스 만 등의 이름이 있었다.
결국 이 검증되지 않은 블랙리스트로 말미암아 희생된 사람은 통계에 의하면 수백 명이 투옥되었고, 1만명 이상이 실직하거나 괴롭힘을 당했다고 한다.
또 다른 케이스가 있다. 현대 중국의 대재앙이라고 일컬어지는 문화대혁명은 1966년에 발단되어 1976년에 종막을 고했다. 그 기간 중 국가보위부에 등재된 블랙리스트로 희생당한 사망자 수는 무려 적게는 40만 명, 많게는 200만명으로 추정된다. 그것은 정치적 투쟁으로서 마오쩌둥을 주석으로 다시 옹립하기 위한 대사건이었다.
요즈음 ‘최순실게이트’로 국정이 뒤흔들리고 있다. 지상파, 종편 가리지 않고 온종일 그것에 대한 뉴스뿐이다. 더구나 국회의 국정감사에 이어 특검, 헌법재판소 등 감사와 재판과정이 소상하게 중계되어서 어느땐 채널 돌리기조차 싫을 정도이다.
이 소요 속에 가장 눈에 띄는 사건 중 하나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건이다. 표현의 자유를 압살하고 개인의 예술 활동을 저해하는 권력층의 갑질로서 문화예술을 보호하고 지원하며 진흥에 앞장서야 할 문체부와 문화예술위원회가 놀랍게도 블랙리스트에 순응하고 이를 적극 집행했다는 증언들을 들으며 우리는 정말 자괴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더구나 그 시행자의 근원이 청와대로부터라고? 이건 정말 말도 안된다. 아직은 재판과정이라 심증적인 뉴스를 접하고 있지만 사실 엄밀한 잣대로 기술하건데 이런 속뒤집히는 관행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라고 본다.
누군가로부터 이런 외침을 들었다. 문화 블랙리스트 청와대에만 있는줄 아세요? 대전은요?
도완석 연극평론가, 한남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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