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산책] 서재의 책을 버릴 바에는, 차라리 나를 내다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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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서재의 책을 버릴 바에는, 차라리 나를 내다 버려라!

김우영 작가의 문화산책

  • 승인 2017-02-03 14:08
  • 김우영(작가·대전중구문학회 회장)김우영(작가·대전중구문학회 회장)


한파(寒波)가 몰아치던 지난 설날 연휴, 온 집안 식구들끼리 서재정리를 하였다. 이유는 오는 5월 아들이 결혼을 앞두고 2층 서재를 1층으로 옮겨야 한다는 것이다. 즉, 아들이 결혼하여 2층에 아늑한 신혼방을 꾸밀 터이니 아빠가 좋아하는 책은 1층으로 가져가라는 것이다.

본디, 대전 중구 문화동 우리집은 1층 슬라브 단독주택이었는데 2층에 15평 정도에 방2개와 거실을 몇 년 전 증축했다. 그간 큰 딸이 살다가 중국 칭다오로 출국하면서 비어 있었다. 따라서 2층 감나무가 보이는 노을지는 서편방에 그간 아끼던 책 3천여권을 서재로 활용했다.

2층에 서재를 꾸민 것은 직장정년 후 감나무 아래에 평상을 깔아놓고 그간 못읽은 책을 한 권, 한 권 읽으며 유유자적 작가생활을 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그게 뜻대로 되지 않았다. 1층에서 글을 쓰다가 자료를 찾을 일이 있을 때 2층에 올라가지 못했다. 또한 2층 감나무 아래에 평상을 깔고 누워 책을 읽는다는 것이 맘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울며겨자 먹기식으로 아들의 요청대로 2층에 있는 책을 1층으로 옮기기로 했다. 아내와 아들, 시집간 딸 둘과 사위 둘 등 총7명이 동원되어 책3천여권을 1층으로 내리기란 어려운 일 이었다.

처음에는 종이박스에 담아 2층에서 내리다가 워낙 무거워 둘째 사위 제안에 따라 바구니에 책을 담아 밧줄을 연결하여 아래층으로 내리기 시작했다. 말이 책 3천권이지 막상 서재의 책을 바닥에 내려놓으니 산 같이 쌓여 웬만한 동네서점 규모였다. 또한 책을 운반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마치 돌덩이 같이 무거워 사과상자에 책을 가득 담아 혼자 운반하기는 어렵다.

평소 애교를 많이 떠는 말괄량이 둘째딸이 장갑 낀 손으로 산더미 같은 책을 나르며 한 마디 하자, 옆에서 같이 책을 나르던 아내도 거든다.

“아빠가 원망스러워요. 이 무거운 책으로 식구들 고생시키니 말이예요?”
“이 많은 책을 기증을 받기도 했겠지만, 또 많이 구입도 했으니 얼마나 돈이 많이 들어갔을까요?”
“그래요, 식구들 고생시켜 미안해요. 그러나 이 많은 책들을 읽으며 시인과 작가들을 만나 교유(交遊)했기에 오늘날 중견작가가 되어 대학 강단에 설 수 있지 않았겠니?”
“그래도 그렇치, 가정집에 이렇게 많은 책이 있는 집은 처음 봤어요?”
“허허— 하여간 작가 아빠, 작가 가장을 두어 고생시켜 미안하오!”

허탈한 생각을 가지며 문득 시인 ‘제인 헤밀턴’의 말이 떠 올랐다.

“더 넓은 세상을 가기 위해서는 책이 필요하단다. 그대가 인생을 경영하고자 한다면, 가능한 많은 책을 읽어야 한다오!”

2층에서 책이 바구니를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며 마치 하늘에서 지구상에 내려주는 ‘지혜의 선물’이라고 생각을 했다. 유리창 너머로 책을 받아 안방서재로 가져오면 나는 안방에서 작가별, 종류별로 구분하여 가나다라… 순서로 정리를 하였다.

책을 정리하며 한 권, 한 권 살펴보았다. 마치 좋은 책을 읽을 때, 3천년이나 산 것 같은 느낌을 갖았다는 철학자 ‘에머슨’의 말이 생각나게 하는 순간이다. 책은 영혼이 밖을 내다보는 창문이며, 위대한 천재들이 인류에게 남겨 놓은 훌륭한 유산이지 않는가!


지금으로부터 50여년 전 10대 소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추억의 시간여행이었다. 본격적인 문학서적을 만나기는 중학교 때. 우연히 동네에서 사는 누나네 집을 가보았다. 여고를 다니던 그 누나 서재에 춘원 이광수의 ‘흙’과 소월 김정식의 ‘진달래꽃’을 비롯하여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웰리엄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이란 책들이 있었다.

마치 이탈리아 탐험가 ‘에스파냐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같은 마음으로 그 책을 한 권, 한 권 빌려다 밤을 지세우며 읽었다. 이렇게 만난 ‘문학의 강’은 미래의 작가를 꿈꾸는 소년을 심연(深淵)에 빠지게 했다.

집에서 읍내 학교까지 왕복 8km의 거리. 집 앞 동 트는 산을 가볍게 올라, 실안개 자욱한 방죽을 지나, 서천읍 들판 바둑판같은 논뚝길을 가로질러 녹슨 철길을 따라 걷다보면 시골역이 나온다. 다시 빨간색 대한통운 창고를 끼고 시골역을 휘돌아가면 안온한 산 아래 작은 학교가 고독한 문학소년을 반긴다.

이렇게 몇 년을 통학하며 고개 숙이고 다녔던 길 위에서 문학을 공부하고 인생을 생각했다. 이어 문학청년시절을 거쳐 지금의 곰삭은 중견작가의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지난 설 연휴 서재를 옮기며 만난 3천여권의 책에서 10대 소년시절에 만난 문학서적, 무명작가 시절 문학동인회 함께했던 각 지역의 동인지, 본격적 프로페셔날 시절 만났던 국내외의 시인, 작가들이 보내준 격조높은 저서들을 두루 만났다.

궁극적으로는 부평초처럼 떠돌다 떠돌다가 이 세상을 떠나 고향 충남 서천 시골 선산 남향받이에 묻히겠지… 문득 서재를 정리하고 책들을 만나면서 염려가 생겼다.

‘내가 이 세상 떠난 후 현재 서재에 있는 책들을 자녀들이 혹시 버리지나 않을까…?’

설마, 아내가 책을 버리지는 않겠지만 자녀들이 지난 설 연휴중 2층 무거운 책을 옮기며 귀찮은 듯한 표정을 보면서 마음이 무거웠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세상 떠날 때 묘비명에 이렇게 새기고 싶다.

“서재의 책을 버릴 바에는, 차라리 나를 내다 버려라!”
‘끝’

- 금주의 TIP
“책은 우리의 가장 조용하고도 영원한 친구이다. 또한 우리 곁에 가장 가까이 있는 가장 현명한 카운슬러이자, 가장 인내심 있는 선생님이다. 그리고 책에는 우리 시대의 석학들이 전하는 번뜩이는 진리가 있다.”


김우영(작가·대전중구문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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