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뉘가 버린 지도 모르는 너를 육군 장교인 아들이 집에 데리고 들어 왔을 때는 우리 부부는 물론 특히 네 둘째 언니는 기겁을 하며 한동안 너를 멀리 했었지. 근데 너의 그 귀엽고 아름다운 재롱과 행동이 가족모두를 미쁘게 만들어 너를 마침내 셋째 공주로 삼기로 하고 10여년간 동고동락을 같이 했지. 너에게 제일 기겁을 한 둘째 언니가 널 제일 예뻐해 주었고 엄마 또한 널 극진히 끼고 살았지.
특히 먹성이 좋은 너는 우리 식구 식사 때만 되면 다당히 밥달라고 발광을 하다시피 매달리고 애원하고 큰소리로 호령도 연신 해댔지. 그리고 아빠가 약주를 들고 늦게 귀가 하면 너만은 의리 있게 날밤새다 시피 현관 앞에 앉아 있다가 아빠가 들어서면 영락없이 내 바지가랭이를 네 손으로 붙잡고 안아 달라하여 내 볼에 수없이 뽀뽀세례를 퍼부어 대고는 네 잠자리로 들어가 잠자고는 했지.
너무나 사랑스런 우리 ‘김 이쁜’ 공주. 그런 네게 이 아빠는 ‘시’와 ‘수필’ 십 수편으로 너를 찬미 찬송했지. 너는 그래도 글쟁이 아빠를 만나서 네 삶의 행적을 노래할 수 있게된 것을 행복한줄 알아야 해하고 공치사도 좀 했지. 그런 너의 수명이 사람 나이로 90을 훨씬 넘는다 해도 여전히 니 행동이 좀 굼뜨고 기침을 자주하고 먹성 좋은 녀석이 하루 이틀 좀 거르는 거 빼고는 예쁜 우리 셋째 공주의 품위를 잘 유지 햇었지.
그러던 너가 시나브로 아니 급격하게 몸무게가 줄어들고 먹거리에 입도 대지 않는 여러날 수시로 횟수가 잦아졌지. 몇초 간격으로 하는 기침이라지만 그래도 들리는 정도였는데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가 됐고 차마 못 봐줄 몸부림치는 기침 자체였다. 두 눈이 안 보이는 건 물론이고 귀도 완전히 먹어 거의 죽지 못해 사는 고통 바로 그것이었다. 사람 같으면 어떠한 형태로든 피울음의 고통을 호소라도 할수 있을 터인데 우리 공주는 그리도 못하는 처지 차맘 엄마는 뜬눈으로 밤새기가 생활이 돼버려 집식구가 어찌될까 노심초사의 삶, 그것의 연속이었다. 이렇게 정이란 무서운 것인가! 괜스레 받아들였다는 당치 않는 후회도 해보게 됐다.
이렇게 사람이란 나약한, 간사한 존재인가. 그간 우리 ‘김이쁜’이부터 받은 즐거운 나날이 얼마였던가. 못난 엄마 아빠 만나서 더 오래 같이 살다가 자연으로 회귀할 우리 셋째공주의 박복함을 각별히 긍휼히 여긴다. 하여 여기 우리 ‘김 이쁜’이가 그래도 기운이 좀 있을 때 이쁜이를 기려 쓴 ‘詩’를 밖으로 外出시켜 우리 가족이었던 이쁜이와의 因緣에 대한 최소한의 禮를 갖추는 추모의 情表로 대신해둔다.
우리 그녀는 여전히 예쁘다/ 아흔이 넘는 나이일지라도/ 예쁜 그녀가/ 우리 부부 속을/ 들었다 놓는다/ 눈깜짝 깜짝도 양반/ 지난 해 추석날 밤/ 하늘가 맴도는/ 국끓이는 콜록콜록/ 우정 둘째 딸 한솔이의 기지로/ 야간 응급병원에서/우리 부부 알아 본 그녀/ 그러나/ 우리 예쁜 그녀의 망나니 짓은/부터 부리느니/ 영역표시 곳곳 때때없는 찔끔질펀/ 먹거리 거부 시위 며칠몇날/ 그러다가도/ 구걸행각 쌈닭 저리 가라고/ 그녀의 럭비공 행각에/ 투미한 우리 부부/ 어제가 오늘이었음 지경/ 종이 한 장의 이별/ 시나브로 다가오는가/ 우리 예쁜 그녀 뒷바라지에/ 우리 부부 세월 출장 보낸 듯/ 정신줄 놓고 지내지만/ 아름다운 뒤태로/ 종이 한 장 저 편 속으로/ 스러지길 바랄 뿐/ 바람이 자고 갈 그날에
김선호 시집- <연정하모니pp66-67."여전히 예쁜 rsu지만"> 전문
김선호 전 한밭대 인문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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