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
2000년 7월부터 적용하고 있는 현재 건강보험료 부과체계는 송파 세 모녀와 같이 소득이 전혀 없는 사람도 월 수만원씩의 보험료를 내야 하는 불합리한 방식이었다. 지역가입자의 경우 성·연령·재산 등을 기준으로 보험료를 부과하기 때문에 소득 없이 경제적으로 힘들게 생활하더라도 과도한 보험료를 부담해야 했다. 그 결과 2015년 기준 건강보험료를 6개월 이상 체납한 가입자가 142만 세대(2조 1,632억원)이고, 그 중 5만원 이하인 생계형 체납자가 67.0%(95만 세대)나 되었다. 송파 세 모녀 자살은 이처럼 불공평한 부과체계가 만들어 낸 비극이었다.
불공평한 건강보험료 부과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13년 7월부터 전문가, 관련단체, 정부가 함께 참여하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선 기획단’을 구성하여 개편의 기본 방향과 모형을 마련하였지만, 2015년 1월 발표를 앞두고 돌연 발표가 취소되는 우여곡절을 겪을 만큼 쉽지 않은 일이다.
며칠 전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에 대한 두 가지 중요한 일이 있었다. 하나는 헌법재판소 판결이고, 다른 하나는 정부가 우여곡절 끝에 마련한 부과체계 개편안을 발표한 것이다.
먼저 헌법재판소 판결을 보면 현재 부과방식이 위헌이라고 판단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위헌 정족수가 모자라 합헌결정이 이뤄지긴 했으나, 재판관 5인만 합헌결정을 하고 나머지 4인의 재판관은 위헌의견을 내는 등 재판관들 사이에서도 팽팽하게 의견이 대립했다. 헌재 판결은 결국 소득파악이 정확히 안 되는 한계가 있어 지금과 같은 방식의 불가피성은 인정하나, 가입자 간의 차별을 야기하고 저소득자에게 더 많은 부담을 주는 문제점은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정부 개편안은 지역가입자의 평가소득폐지, 고소득·고재산 피부양자 지역가입자 전환, 고소득자 부과 확대 등을 담고 있다. 개편안이 가입자 간의 형평성 추구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다.
정부의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은 이제 국회에서 법 개정 과정을 거쳐 시행될 것이다. 2월 중 이루어질 국회 논의의 제1원칙은 ‘공정성 강화’이다. 소득이 충분함에도 무임승차했던 피부양자에게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보험료를 부과하고, 소득과 재산이 거의 없어 보험료를 내기 어려운 사람들은 부담을 최소화하는 개편안이 지체 없이 시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정부 방안에는 빠져 있는 국고지원 확대와 지속이 포함되어야 한다.
건강보험료 부과체계에 대한 형평성과 공정성 문제로 한해에만 수천만 건의 민원이 제기되어 왔지만, 아무런 변화 없이 몇 년을 흘러왔다. 이게 정상은 아니고 이러한 상황에서 정부에 대한 신뢰,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쌓일 리가 만무한 일이다.
많은 사람이 이야기하듯이 대한민국의 여러 현안이 산적해 있지만, 우리가 그동안 문제들을 해결하지 못했던 이유는 방안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방법이 없어서 풀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개혁 앞에서 주저하고 변화 앞에서 주저했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5년 1월 부과체계 개편방안 발표를 앞두고 돌연 연기한 사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최근 국정농단사태로 터져 나온 국민적 분노는 이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자는 변화에 대한 열망으로 바뀌고 있다. 저소득층에게 불리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건강보험료 부과체계 개편과 같은 개혁과제들을 미룰 이유가 없다.
양승조 국회 보건복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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