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현옥 논산중앙초등학교 수석교사 |
살아가며 삶의 순간들에 대한 기다림의 내용은 시작부터 한 갈래 한 갈래 엉킨 듯 풀린 듯 소용돌이치며 끈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책 속의 내용에 나를 넣으며 ‘나는 어느 지점에 있을까?’ 지난 삶 속에서 나의 현재를 찾고 있으면서, ‘나는 지금 무엇을 기다리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해를 맞이하고 학기를 마친 후 학년 말을 기다리고 있는 교사에게는 만남과 이별이 긴 실타래처럼 연결되어 있다.
학년 말에는 아쉬운 이별로 그 동안의 정들었던 아이들을 한 학년 씩 올려 보낸다. 그 후 새 학기에는 반짝거리는 눈으로 나를 기대하고 있는 새로운 아이들을 맞이한다.
그런가 하면 몇 년에 한 번씩은 학교를 옮기는 일도 해야 한다. 올해를 마지막으로 근무 기간이 만기가 되어 다른 학교로 옮겨야 해 내신서를 작성하기 위해 컴퓨터를 켰다. 머리가 지근거린다. 정들었던 학교를 떠난다는 이별의 아쉬움과 더불어 새로운 환경에 대한 두려움이 얹어지기 때문이다.
한참을 모니터만 멍하니 바라보다 걸려온 전화를 받고 약속 장소로 급히 출발했다. 10년 전 같은 학교에서 근무했던 선생님들과의 정기적인 모임에 참석했다.
좋은 사람들 얼굴을 보니 굳어졌던 얼굴에 미소가 번진다. 시간이 지날수록 따뜻하고 편한 사이가 되고 있다. 서로의 안부와 걱정을 토닥거리며 맘을 나누고 있을 때 아까부터 음식을 날라주는 여학생과 계속 눈이 마주쳤다. 낯이 익은 얼굴이라 생각하며 기억을 더듬는 순간이었다.
“선생님, 맞으시죠? 2008년도 ○○초등학교에 계시지 않았나요?”
“선생님, 4학년 때 선생님이 가르쳐주셨던 김○○이예요.”
다니고 있는 대학교 생활부터 궁금했던 제자들 소식에 옛 시절 추억까지 짧은 순간이었지만 즐거운 만남이었다.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늘 밝고 긍정적인 아이였는데 성실하게 생활하며 스스로의 꿈에 다가가고 있는 모습을 보니 대견스러웠다.
연락처를 남기고 돌아오는 길은 나도 모르게 그 시절의 시간을 떠올리고 있었다. 진심 마음을 이해해주는 선생님들과 우연한 제자의 만남은 하루 종일 웅크려졌던 기분을 따뜻하게 위로해 주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카톡 알림음이 계속 울려댔다. 헤어진 선생님들의 도착 안부겠지 하는 맘에 서둘러 답장을 보내려 전화기를 꺼내 들었다.
그런데 메시지에는 아까 만났던 제자와 당시에 함께 했던 아이들의 반가움이 묻어난 내용들로 가득 차 있었다. 긴 시간이 지났는데도 하나 어색하지 않았다. ‘보고 싶어’, ‘우리 만나야지!’ 등 서로 안부를 묻고 자신들의 과거와 지금의 상황을 전하는 이야기 속에는 함께 한 시간을 공유하고자 하는 기다림이 긴 인연의 끈으로 연결되고 있었다. 교사여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순간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그동안의 무거운 마음은 학년 말 시간을 준비 하며 이별의 기다림을 엮은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이제는 담담히 받아들이려 한다.
갑작스럽게 만난 제자의 반가운 맘이 또 다른 기다림으로 연결되어지듯 앞으로 다가올 또 다른 시작을 즐겁게 맞이할 것이다. 떠나기 싫은 것은 그만큼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했던 결과이며 그 결과는 끝이 아니라 어딘가에서 꿈을 향해 성장하고 있는 제자들처럼, 교직 생활에서 격려와 지지의 관계를 맺고 있는 선생님들과의 행복한 소통처럼 다시 내게로 돌아올 기다림이라는 믿음을 가질 것이다.
새 학기를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지금, 나는 또 어떤 기다림을 마주할 수 있을까?
즐거운 상상과 긍정적인 희망으로 새롭게 맞이할 만남을 기다리며...
권현옥 논산중앙초등학교 수석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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