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버전]
‘모나리자’의 유명세 도난 전과 후로 나뉜다?
1911년 8월. 부르브박물관에 이탈리아 화가 레오나르도다빈치의 ‘모나리자’가 사라집니다.
도난범은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림의 액자작업을 하던 이탈리아 출신인 페루지아란 사람이었죠.
당시에는 보안이 그만큼 취약했습니다. 페루지아가 월요일 아침에 그림들 들고 유유히 사라졌지만 화요일에서야 루브르는 그 사실을 알아차렸죠.
여기서 잠깐, 페루지아는 왜 모나리자를 훔쳤을까요.
네 짐작하셨겠지만 그는 이탈리아 사람이었죠. 페루지아는 레오나르도의 작품을 나폴레옹이 훔쳤다고 생각해 고국으로 가져갈 결심을 하게된 것이죠.
그런데 따지고보면 모나리자는 프랑스가 거금을 주고 구매한 작품이었어요.
레오나르도를 사랑했던 프랑수아1세가 거금을 주고 그림을 구매해 퐁텐블루 궁전에 걸었습니다. 실제 나폴레옹도 ‘모나리자’를 탐내 자신의 침실에 놔 두기도 했다고 합니다.
‘모나리자’가 사라지자 파리는 뒤짚어집니다. 파리경찰은 루브르에 불만을 품은 직원의 행동이라고 생각을 했을 했지요. 곧 돈을 요구할거라 생각했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었던 겁니다.
결국 당시 유명 시인인 기염 아폴리네르와 화가 파블로 피카소도 조사를 받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기욤의 조수가 루브르에서 흉상을 훔쳐 판매했는데 피카소역시 장물인지 모르고 흉상을 구입한적이 있기 때문이었죠. 결국 피카소는 증거 불충분으로 풀려났지요
‘모나리자’가 사라지자 루브르박물관엔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합니다. 모나리자가 자리했던 빈 벽을 보기위해서였죠. 그러면서 다빈치와 모나리자의 명성은 계속해서 올라갔습니다.
자 다시 페루지아를 쫒아볼까요.
그는 다빈치의 고향인 피렌체 미술상인 제리에게 ‘모나리자 ’우피치 미술관‘에 영원히 걸고 싶다”며 50만리라를 원한다고 흘립니다. 당시 우피치 관장인 포지는 작품이 진품임을 알아차리고 경찰에 신고를 합니다. 도피 2년만에 페루지아는 희대의 도난범으로 낙인 찍히게 됩니다.
여러분이라면 어떨까요. 우리의 국보급 미술을 훔쳐온 국민에게 돌을 던질 수 있을까요 물론 페루지아는 돈을 요구했지만요.
결국 페루지아는 감옥에 가게되지만 이탈리아 영웅으로 추대가 됩니다. 심지어 감옥에 선물이 쌓여만 갔죠.
몸값이 오를대로 오른 ‘모나리자’는 루브르로 돌아가기전 미국순회를 하게됩니다. 미국 도착 당시 케네디 부부의 환대까지 받게되면서 세계적으로 인기가 치솟게 됩니다.
다시 되찾은 모나리자. 현재는 방탄벽에 쌓여 먼 발치에서만 보는걸로 만족해야 하는 귀한 몸이 됐습니다.
사실 도난 이후 더욱 유명세를 타긴 했지만 ‘모나리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가장 사랑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가 프랑스에 올때도 이 작품을 품에안고 알프스를 넘었다고 하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초상화인 ‘모나리자’는 실존이물이기도 했습니다. 리자 게라르디니는 메디치 가문에 직물을 공급했던 델 지오콘도의 두 번째 아내로 초상화가 그려진 당시 24살이었다고 해요.
알면 알수록,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모나리자’, 파리에 간다면 먼 발치에서라도 놓치지 마세요. /연선우 기자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