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
그러나 일기 원문을 보면, 때때로 글자가 아주 흐린 상태이거나, 쓸 당시부터 먹물이 번졌거나, 장군 자신이 수정하는 과정에서 도저히 판독할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 경우 전문가들은 해당 글자 수를 추정해 그 만큼의 공간에 판독 불능 표시를 남겨둔다. 난데없는 이야기 같지만, 1596년 1월 1일과 1월 2일에 기록된 글자들 때문이다. 다음은 1월 1일과 2일 일기 번역문들이다. “맑았다. 밤 1시에 들어가 어머님을 찾아뵈었다. 늦게 남양의 숙부님와 신 사과가 와서 이야기했다. 저녁에 어머님께 하직 인사를 하고 본영으로 돌아왔다. 마음이 아주 심란했다. 밤새 잠들지 못했다. 덕(德)은 몸을 빛나게 한다.” “맑았다. 일찍 나갔다. 군대 기물을 하나하나 확인하고 점검했다. 이날은 나라 제삿날이다. 부장 이계가 비변사 공문을 갖고 왔다. 덕(德)은 몸을 빛나게 한다. 명나라와 일본이 강화 협상을 하고 있던 시기였다. 장군은 여전히 최전선에게 경계를 서고 있었다. 그러다 설날을 맞아 전라 좌수영 근처에 피난 중이셨던 어머님을 찾아뵙고, 또 자신이 직접 지휘했던 좌수영의 각종 무기를 비롯한 군용 장비를 점검하러 갔던 것이다.
그런데 이 이틀간의 일기 끝에는 맥락 없는 표현 즉, “덕(德)은 몸을 빛나게 한다”가 등장한다. 원문은 “德潤身(덕윤신)”이다. 일기 본문과 달리 추가로 기록한 듯하고 흐릿한 글자라 일부 번역본에서는 번역되지 않은 글자이다. 처음에는 그 표현이 왜 1일과 2일 일기 끝에 기록 되어 있었는지, 장군이 어떤 목적으로 덧붙였는지 그 의미를 알 수 없었다.
그 해답은 멀리 있지 않았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말을 하거나, 기록을 할 때 각종 고전을 인용해 자신의 본래 의도를 드러내곤 했기 때문이다. 본래 “德潤身(덕윤신)”은 유교의 기본 경전인 오경(五經)의 하나인 '대학(大學)'에 나오는 말이다. “부윤옥 덕윤신 심광체반.” 그 뜻은 “부유함은 집안을 빛나게 하고 덕은 몸을 빛나게 만들어주니, 마음이 넓어지고 몸은 편안해진다”이다. 1월 1일과 2일 일기 끝의 “덕(德)은 몸을 빛나게 한다”를 쓴 이유를 상상해 보면, 이순신 자신의 1596년 새해 목표이자 결심을 뒤늦게 써넣은 것인 듯하다.
그런데 눈길을 끄는 것은 '대학'의 문장 중 “富潤屋(부윤옥, 부유함은 집안을 빛나게 한다”는 쓰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이나, 물질을 추구했던 사람들이라면 당연히 썼을 말이다. 이순신이 썼어도 '대학'의 문장이기에 누구도 탓하지 않을 표현이다. 또 원문을 보면, 그것을 써넣어도 충분한 공간이 있었다. 그런데도 그는 덕을 강조하는 글만 썼다. 그것도 2일에 한 번 더 강조하듯이 썼다. 이는 그가 개인적인 부유함을 추구한 사람이 아니라, 리더로서, 또 한 사람으로 사람다움을 추구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새해를 맞아 덕을 더욱 더 열심히 닦겠다는 결심, 그것이 이순신의 새해 결심이었다.
사람들의 새해 결심은 대부분 작심삼일(作心三日)이다. 이순신은 어땠을까? 이순신은 그 결심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8일에는 자신들을 괴롭히는 상관을 피해 항복한 일본군을 보면서 반면교사로 삼았고, 10일에는 체찰사가 준 물건을 부하 장수들에게 나눠주었고, 15일엔 항복한 일본군들에게 술과 음식을 주었고, 23일에는 헐벗은 군사들에게 옷을 주었다. 또 신상필벌에 단호했던 이순신이었기에 잘못을 한 사람들에 대해서는 사실을 확인한 뒤에는 곧바로 엄벌에 처했지만, 1월의 이순신은 처벌을 미루었다. 또 부하장수들의 잘못을 듣고도 슬며시 눈을 감았다. 함께 활쏘기 시합을 한 순찰사가 진 뒤에 불편한 기색을 보였을 때는 “우스운 일이다.”라면서 넘겼다. 전쟁터에서조차 덕을 닦으려던 새해 결심과 실천은 물질만능주의와 권력지상주의, 집단이기주의에 물든 우리 사회에 작은 경종을 울린다.
박종평 이순신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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