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 오디세이]수학, 포기하지 마세요

  • 오피니언
  • 시사오디세이

[시사 오디세이]수학, 포기하지 마세요

  • 승인 2017-01-23 10:55
  • 신문게재 2017-01-24 22면
  • 양성광 국립중앙과학관장양성광 국립중앙과학관장
▲ 양성광 국립중앙과학관장
▲ 양성광 국립중앙과학관장
“괴물, 늪, 짜증, 악마, 굴레, 두렵다.” 이런 섬뜩한 단어들을 연상하게 하는 것은 무얼까?

안타깝게도 대다수 청소년에게는 '수학하면 떠오르는 것'이다. '우리나라 학생의 30%는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자)라는 조사까지 나온 뒤여서 더욱 씁쓰레하다. 우리 학생들의 수학 수준은 OECD 35개국 중 부동의 1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수학에 대한 흥미도는 거의 꼴찌 수준이라 한다. 왜 그럴까? 우리 아이만은 잘해야지 하는 부모들의 욕심에 성과 위주 교육 당국의 조급함이 더하여 아이들을 짓누르고 있는 건 아닌지 안타깝기만 하다.

1960년대 초 모두가 궁핍했던 시절, 필자의 어릴 적 유일한 기쁨은 누이들 심부름으로 건빵 사러 구멍가게에 가는 것이었다 - 보답으로 주어지는 건빵 몇 개의 달콤한 유혹과 함께. 숫자를 셀 줄 몰랐던 당시, 1원에 10개 하는 건빵을 손가락 하나에 건빵 하나씩 짝을 맞춰가며 열을 세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수렵 채집을 하던 먼 조상도 물물교환하면서 바꾸려는 물건을 하나씩 짝을 맞춰 늘여놓고 어느 쪽이 많은지 비교하지 않았을까? 인류가 수를 기록한 지 3만여 년이 되었고, 숫자를 사용한 지는 6000여 년, 수학 이론을 정립하기 시작한 지도 2500여 년이 흘렀다. 그러나 십진법이 사용된 지 450년 만에, 컴퓨터가 사용된 지 50년 만에 가공할만한 인공지능(AI)이 출현하여 인류를 충격에 빠트렸다. 수의 진보가 앞으로 얼마나 더 빨리 일어날 것인지 전문가들조차 예측할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만물은 모두 수”라고 한 피타고라스를 추종해서 모인 피타고라스학파는 비밀주의로 유명해서 300여 명의 소수에게만 비밀 서약을 받고 수학의 심오한 지식을 전수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제 수학은 더는 소수 사람의 전유물이 아니다. 수천 년을 이어 축적된 수학 지식이 교과서와 수많은 학습서를 통해 손쉽게 접근할 수 있는 세상이 되었다. 그렇다 해도 수학은 수학자의 몫, 조금 더 봐준다고 해도 과학자의 몫이라는 생각을 하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전공도 하지 않을 건데 왜 그렇게 골치 아픈 수학을 공부해야 하나'라는 질문도 흔히 듣는다. 그러나 우리가 인정하든 인정하기 싫든 수학은 이제 경제학, 사회과학 등 모든 학문에서 통계와 모델링 같은 기본적인 도구로 사용되고 있으며, 금융산업과 생물정보학, 빅데이터, 인공지능 등 신시장 개척의 요체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인류가 재산관리를 위해 수를 사용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1년에 10조 기가바이트의 데이터가 생산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를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경쟁력에서 큰 차이를 보였다. 이러한 경쟁력의 차는 정보력의 차, 빈부의 차, 풍요로움의 차로 나타났다. 이제는 기계도 스스로 사고하고 학습하는 세상이 되었는데, 수학을 포기한다는 것은 국제 협상장에서 나만 전혀 모르는 외국어로 이야기하는 것과 같은 핸디캡이 될 것이다. 최근의 쉬운 영어, 쉬운 수능 경향은 대학 입시에서 점점 더 수학을 학력 측정 도구로 사용하도록 유혹하고 있다. 수학은 오래 사고하고 추론하여 결론을 얻는 과정이 중요하나, 공식을 외워 짧은 시간에 더 많은 문제를 풀도록 강요한다. 과정이 맞아도 계산 실수를 하면 영점이 되게 하거나, 변별력을 준다는 핑계로 함정을 파놓는 경우가 많아 끊임없는 반복 연습을 강요한다.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지쳐가고 수학에 염증을 느끼게 된다. 이제 그동안 어쩔 수 없다고 내버려 둬 온 불편한 이야기를 공론화하여 세상을 바꿔야 한다. 쉬운 수학, 재미있는 수학이 되도록 교육과정에서 학습량과 난이도를 조정하여야 한다. 체험과 탐구, 과정 중심으로 평가 방식도 바꾸어야 한다.

독일 수학연구소에서 개발하여 우리나라에도 소개된(immaginary.org/ko) IMMAGINARY라는 프로그램같이 터치스크린으로 게임을 하듯 재미있게 체험하며 자연스레 수학의 원리를 깨닫게 하여야 한다. 대다수가 수학을 포기하는 중1, 중2 시기를 이렇게 수학에 흥미를 붙여가는 시기로 보내게 하는 것이 일생을 수포자로 살게 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값질 것이다. 이후 교육과정에서 이공학 전공자들에게 수준별 심화학습을 별도로 제공하여 심화학습의 정도에 따라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학생을 선발하도록 입시제도를 바꾸는 것은 어떨까.

양성광 국립중앙과학관장

중도일보(www.joongdo.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 금지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랭킹뉴스

  1. '시가 총액 1위 알테오젠' 생산기지 어디로?… 대전시 촉각
  2. '행정수도 개헌' 이재명 정부 제1국정과제에 포함
  3. "국내 최초·최대 친환경 수산단지 만든다"… 충남도, 당진시 발전 약속
  4. 이 대통령, 세종시 '복숭아 농가' 방문...청년 농업 미래 조망
  5. 논란의 금속보호대 대전교도소 1년간 122회 사용… 기록누락 등 부실도
  1. "착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는데"…고 이재석 경사 대전대 동문·교수 추모 행렬
  2. 고교학점제 취지 역행…충청권 고교 사교육업체 상담 받기 위해 고액 지불
  3. 이철수 폴리텍 이사장, 대전캠퍼스서 ‘청춘 특강’… 학생 요청으로 성사
  4.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5.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대전충청본부, 치매안심센터 찾아 봉사활동

헤드라인 뉴스


논란의 금속보호대… 대전교도소 1년간 122회 사용

논란의 금속보호대… 대전교도소 1년간 122회 사용

<속보>교정시설에서 수용자의 폭력이나 자해를 방지할 목적으로 제한적으로 허용되는 금속보호대가 대전교도소에서 1년간 122차례 사용되고 한 번 사용되면 평균 3시간 50분간 수용자에게 착용시킨 것으로 조사됐다. 금속보호대를 이용해 6시간 이상 수용자를 결박한 사례도 16차례 있었는데 사후 전자기록을 남겨놓지 않거나 부실작성 등 보호장비 사용에 대한 문제가 추가로 확인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대전교도소장에게 발송한 직권조사 결정서를 분석한 결과 폭력이나 자해 위험 수용자를 관리할 목적의 여러 보호대 중 결박 강도에 따라 통증이 뒤따르는..

서울대 10개 만들기·탑티어 교수 정년 예외…교육부 새 국정과제 본격 추진
서울대 10개 만들기·탑티어 교수 정년 예외…교육부 새 국정과제 본격 추진

새 정부의 서울대 10개 만들기, RISE 재구조화, AI 인공지능 활용 등 교육 분야 주요 국정과제가 본격적으로 추진된다. 학문별 대가로 선정된 교수에 대한 정년 제한을 풀고, 최고 수준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은 물론 대학생 학자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지원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교육부는 6대 국정과제를 위한 25개 실천과제(공동주관 1개 국정과제, 3개 실천과제 포함)를 최종 확정했다고 17일 밝혔다. 우선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실현해 거점국립대에 대한 전략적 투자와 체계적 육성에 나선다. 학생 1인당 교육비를..

해수부 부산 이전…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 대안은
해수부 부산 이전…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 대안은

이재명 새 정부가 오는 12월 30일 해양수산부의 부산 청사 개청식을 예고하면서, 정부세종청사 공백 해소를 위한 동반 플랜 마련을 요구받고 있다. 수년 간 인구 정체와 지역 경제 침체의 늪에 빠진 세종시에 전환점을 가져오고, 정부부처 업무 효율화와 국가 정책 컨트롤타워 기능 강화를 위한 후속 대책이 중요해졌다. 해수부의 부산 이전에 따른 산술적 대응은 당장 성평등가족부(280여 명)와 법무부(787명)의 세종시 이전으로 가능할 것으로 분석된다. 단순 셈법으로 빠져 나가는 공직자를 비슷한 규모로 채워주는 방법이다. 지난 2월 민주당..

실시간 뉴스

지난 기획시리즈

  • 정치

  • 경제

  • 사회

  • 문화

  • 오피니언

  • 사람들

  • 기획연재

포토뉴스

  •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숭고한 희생 잊지 않겠습니다’

  • 대한민국 대표 軍문화축제 하루 앞으로 대한민국 대표 軍문화축제 하루 앞으로

  • ‘청춘은 바로 지금’…경로당 프로그램 발표대회 성료 ‘청춘은 바로 지금’…경로당 프로그램 발표대회 성료

  •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 새마을문고 사랑의 책 나눔…‘나눔의 의미 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