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황선미 지음 / 사계절 / 2014 刊 |
야산을 끼고 지대도 높아 버스 종점이기도 한 한적하고 작은 버찌마을이 이 책의 배경이다. 이곳의 공터이자 버스정류장이며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에 어떤 노인이 한명이 들어온다. 이 노인은 강대수라는 노인으로 실은 마을을 둘러싼 야산 철책 경계 안에 오래된 빈집의 주인이었다. 마을 사람들은 야산을 낀 그 거대한 저택을 '거인의 집'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거인의 집]. 저자는 왜 그 집의 이름을 거인의 집으로 설정했을까?
거인의 집이란 단어는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이란 그림책을 떠올리게 한다. [거인의 정원]이란 책은 욕심 많은 거인이 자신의 정원에 놀러오는 아이들이 못마땅하여 정원에 울타리를 치고 아이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버리는데 이후 거인의 아름다웠던 정원은 봄이 찾아오지 않는 차가운 겨울 정원이 되어 버리게 된다. 거인은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아이들과 좋은 친구가 되어 봄이 다시 찾아오는 행복한 정원이 된다는 이야기이다.
오스카 와일드의 [거인의 정원]처럼 이 책에서 거인의 집은 그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어린 시절을 버찌 마을에서 보냈던 강노인은 병이 들자 바쁘고 치열하게 살던 삶에서 벗어나 어린 시절과 아버지와의 추억, 그리고 그 어릴 때의 상처를 가진 이곳으로 다시 내려온 것이었다. 그러나 조용한 곳에서 삶의 마지막을 보내려던 노인의 바람은 첫날부터 깨어진다. 그의 잠을 깨우는 어디에서인지 알 수 없는 우렁찬 수탉의 울음소리부터 뛰어다니는 강아지와 여자아이까지, 이곳엔 온통 골칫거리뿐이다. 사실 집의 뒤뜰이자 마을의 야산인 그곳은 우거진 나무와 꽃, 청설모가 있고 올챙이와 도룡뇽 알까지 있는 곳으로 마을 사람들이 이전부터 닭을 기르고 열매를 따가고 채소를 심으며 함께해 온 공간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야산을 침범했던 아이들과 개, 고양이 그리고 치매에 걸린 할머니 등은 강노인에게는 골칫거리가 되고 결국 그는 야산으로 가는 입구를 막아버리고 이웃과의 소통을 단절시킨다.
그러나 아이들의 천진함과 따뜻한 마음을 옆에서 조금씩 보게 된 강노인은 치매 걸린 할머니가 어렸을 적 주인집의 딸이었던 송이란 사실과 예전에 아버지를 죽게 한 사건의 기억에 자신의 오해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신을 괴롭히는 뇌종양이라는 암덩어리와 뒤뜰의 골칫거리였던 마을 사람들을 받아들이면서 강노인의 삶은 서서히 남들과 함께하는 삶으로 바뀌게 된다.
처음 만났던 아이들 중 고집 세고 강한 척 하던, 어릴 적 자신과 너무나 닮아 있는 상훈이란 아이와 화해하는 장면에서도 강노인의 변화는 느껴진다. 삐딱하니 마음을 닫고 강한 척만 하던 아이를 먼저 안아주고 “내가 안아준 아이는 네가 유일하다.”며 아이의 자존감을 살려주는 강노인은 더 이상 고집 센 노인이 아니었다.
이 책에서는, 독자들이 마지막에 동화처럼 이뤄지길 바라왔을 지도 모르는, 그가 다시 건강해진다거나 하는 기적은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처음 마을에 왔을 때와는 분명히 달라진 그의 모습을 보여 준다. 비록 뇌종양은 계속 진행될지 모르지만 그는 마음의 상처를 치유했고 퍽퍽했던 삶에 자신을 생각해주는 따뜻한 이웃이 생겼다. 그리고 어쩌면 그가 궁극적으로 건강해진 것은 어릴 적 이 마을을 떠나기 전부터 말라져있던 마음에 촉촉하게 내린 이웃의 정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강희정 가수원도서관 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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