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광석 천주교 대전교구청 마리요셉 신부 |
소년소녀 가장의 후원자가 되어달라는 제안에 기꺼이 대답하고 전화로 후속절차를 밟고 있는데, 카드번호를 먼저 달라는 말에 잠시 혼란스러워졌다. 무심코 전화를 엿듣던 분의 “이상하다”는 말에 상황을 되짚어보니 '보이스피싱'이었다. 또 속았구나! 언젠가도 외국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공항에 외국신부님이 비자문제로 묶여있으니 송금해 달라는 다급한 목소리에 도와주려다 보이스피싱임을 알게 되었다. 이밖에 내 부끄러운 이력은 화려한데, 다른 분들이 당하는 걸 보면 바보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 정작, 나는 대책 없는 진짜 바보다.
며칠 전에 알바자리를 찾았다고 첫 출근했던 조카가 그날로 그만두고 왔다. 전화로 상담하는 일인데, 사실이 아닌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도저히 못하겠다는 이유였다. 나는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아무리 힘들어도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기 때문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적게 일하고 많이 받는 자들을 원망하라”고 했다. 그러면서 정당한 돈벌이와 그렇지 못한 돈벌이를 비교한다. 필요를 충족하려고 돈을 버는 건 정당하지만, 돈 자체를 취하려는 건 잘못된 행위라는 것이다.
특히 그가 가장 혐오했던 일은 고리대금업이다. 돈은 자식을 낳을 수 없는데 돈을 불리는 일은 정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교를 믿는 유럽에서 상업이 발달했지만 고리대금업은 손가락질을 받던 직업이었다. 땀을 흘려 일하지 않으면서 쉽게 돈을 벌기에 도둑질이나 강도질 이상으로 치부되었다. 심지어 매춘이 '수치스러운 짓'이지만, 매춘부는 적어도 노동을 해서 돈을 벌기에 매춘보다도 못된 짓이라는 것이다. 지금과 다소 거리가 있지만 적게 일하면서 많은 돈을 벌며, 누군가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익을 혼자 챙기는 일은 예나 지금이나 하지 말아야 할 짓이다.
물론 새로운 창작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의 경계를 뛰어넘어야 하겠지만, 함께 사는 세상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지키지 않으면 모두가 살기 어렵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경계가 허물어져 버렸다. 대통령과 정부, 대기업과 정치인들부터 국민을 희생하여 자기 이익 챙기기에 바쁘다.
온 국민이 우울증에 걸릴 지경이다. 잘못한 일에 대해서 미안해 할 줄도 모른다. 살아가는데, 어느 정도의 위선이나 이중성은 필요악이랄까, 사회적 예의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히고도, 그런 희생 위에서 살아가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뻔뻔함과 무책임함이 성공의 조건이 되어간다. 오히려 부끄럽거나 미안해하는 것은 약자들의 미덕인 것 같다.
뻔뻔하지 않으면 생존할 수 없는 사회, 나 같은 보통 바보들은 피곤하기만 하다. 물론 나도 누군가에게 뻔뻔한 사람이겠지만.
한광석 천주교 대전교구청 마리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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