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주환 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
그런데 이 탄핵 정국이 아직 마무리되지 않은 와중에 권력구조 개편을 중심으로 하는 개헌 논의가 필요하다면서 펌푸질을 해대는 인사들이 있다. 개헌이 필요하다는 주장은 오래 전에도 있었지만, 레임덕을 우려한 대통령이 자기 임기 내 개헌을 반대한다는 한 마디에 덩치 큰 여당대표가 납작 엎드리면서 개헌 논의는 없던 일이 되었다.
그런 개헌을 이제 와서 구국의 절대조건인 것처럼 목에 핏대를 세우며 주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왠지 입맛이 떨떠름하다. 이 어지러운 상황을 틈타 개헌이라는 거대담론을 제시하여 국정농단에 어떤 형태로든 연루되었던 자신들의 이력을 세탁하려고 하거나, 국민적 지지도에서 열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일부 인사들이 자신들의 정치적 활동공간을 넓혀 보려는 짬짬이 셈법으로 개헌론을 들먹거리지 않나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개헌과 관련해서는 지난 해 국정농단 의혹이 불거졌을 때, 대통령이 국회연설에서 개헌을 언급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온갖 의혹들이 보도되고 있는 와중에 불쑥 개헌을 들고 나온 대통령은 개헌이라는 블랙홀을 이용해서 자신에게 집중된 의혹들을 일거에 덮어버리려고 했다. 연설이 끝나자마자 일부 언론을 중심으로 개헌이 아니면 온 나라가 반쪽이라도 날 것처럼 설레발을 떨었지만, 한 종편이 작은 컴퓨터에 담긴 문서들을 공개함으로써 전대미문의 국정농단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나게 되었고, 대통령이 들고 나온 회심의 개헌카드는 그 즉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대통령 단임제가 가지는 폐해를 지긋지긋하게 보아 온 국민들도 권력의 분산을 중심으로 하는 개헌에 호기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그리 미개한 헌법이 아니다. 갖출 것은 두루 다 갖추고 있다. 우리 헌법은 인간의 존엄성, 경제의 공정성, 정치의 민주화, 통치기구의 권한 등이 잘 규정되어 있다. 그런데도 권력을 사유화한 사람과 그 권력에 빌붙어서 한 건 해보려는 무리들이 헌법의 테두리 밖에서 놀아났기 때문에 이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제도를 바꾸면 세상도 바꾸어질 것이라는 생각이 공염불이라는 것을 우리의 지난 역사가 꼼꼼하게 증명한다. 불이 났으면 불 끄는 일에 전념해야지, 불 끈 후에 생각해도 될 일을 미리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한심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다. 개헌도 마찬가지다. 개헌은 탄핵정국과 그에 따른 후속조치가 마무리된 후, 국민적 기대 속에서 논의를 시작해도 결단코 늦지 않다.
최주환 한국사회복지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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