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우난순 기자 |
‘아니되옵니다’? 어림없는 소리야 이건. TV에 나오는 역사드라마를 보면 조정에서 대신관료들이 왕 앞에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즈언하! 아니되옵니다아, 통촉하여 주시옵소서어~” 하는 장면이 나오잖아. 누울 자리를 보고 뻗으랬다고. 그것도 사람 봐가면서 해야지, 당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국가 지도자한테 간언(諫言)하는 게 쉬운 게 아니란 말씀이야. ‘불통의 아이콘’ 박근혜 대통령 잘 알잖아. 조선시대를 보면 왕조체제지만 왕과 신하가 상하수직관계가 아니라고 할 수 있어. 백성의 목소리가 위로 올라가 신하나 왕과 소통되는 시스템이었지. 물론 무능한 왕도 있었지만.
중국사를 논할 때 당태종은 5천년 중국사를 통틀어 가장 뛰어난 왕으로 평가하잖아. 이때야말로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황금기였다지? 그런데 그에겐 왕에게 잘못을 진언하는 명 재상 위징이 있었어. 위징이란 사람이 역사에 기록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신하의 직언을 수용하는 당태종의 현명함이 있었기에 가능한거야. 태종은 학식도 깊었어. 직접 역사책도 편찬하고 서예에도 뛰어나 그의 글씨가 천년이상 각급 학교에서 본받는 서체였다고 하잖아. 생각하면 참 부끄러운 게 박 대통령은 남이 써준 거 앵무새처럼 읽기만 했지.
비판을 수용할 줄 모르는 박 대통령의 한계
나도 고위공직자로서 권력의 단맛을 잘 알지. 권력자들은 싫은 소리를 듣고 싶어하지 않아. ‘감히 나한테?’라는 오만함에 빠져 달콤한 말만 듣고 싶어하게 돼. 아랫사람이 하는 말이 입에 발린 소리라는 거 아는데도 기분이 좋은 건 어쩔 수 없더라고. 생각해보면 인간은 참 어리석은 존재야.
사실 당태종도 감정이 있는 사람이고 또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황제의 위치에서 신하가 자꾸 비판을 하면 화가 날 때도 있었겠지. 듣기 좋은 소리도 한두 번 들으면 질리는데 싫은 소리 해대는 데 좋겠어? “안되겠어. 그 촌놈을 죽여버려야지. 위징이란 놈이 조회 때마다 나를 욕보인단 말이요” 라고 황후에게 투덜대긴 했지만, 아무튼 난 위징보다 태종이 더 대단하다고 생각하네. 박근혜 대통령을 봐. 국민들 입에 재갈을 물리는 독재자와 다를 바 없었잖아. 원로그룹 ‘7인회’의 한사람인 김용환도 최태민 얘기 꺼냈다가 그날로 아웃됐어. 그걸 보면서 감히 직언이니, 간언이니 생각이나 하겠냐고.
그러고 보면 전여옥의 용기가 대단해. 요즘 종편에 나와서 맹활약하던데 한참동안 정계에서 볼 수 없었잖아. 2년간 한나라당 대변인 하다 박근혜의 치부를 까발렸으니 말야. 다른 사람들은 박근혜 대통령의 실체를 몰랐겠냐고. 다 알면서 박근혜 내세워 정권 잡으려고 침묵한거지. 박 대통령의 소통불능을 거론할 때마다 닉슨 얘기도 빼놓지 않더군. 미국 37대 대통령 닉슨도 사람을 안 만나는 대통령으로 유명했지. 결국 그도 워터게이트로 탄핵받아 중도하차했는데 강대국도 저지경인데 한국이라고 어련하겠어? 이번에 괴물같은 트럼프가 대통령 된 거봐. 미국도 곪을 대로 곪았다는 증거지.
박근혜 부역자들 비난하는 우리는 그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있나
내가 진짜 당신들한테 하고싶은 말은 박근혜, 최진실과 위정자들한테만 나라 말아먹었다고 비난하는데 당신들도 한몫 했어. 독재자 박정희 딸을 대통령으로 뽑은 게 누군데? 남북이 사이좋게 독재자 2세, 3세 체제잖아. 후진국에서나 가능한 정치시스템 아닌가. 외국에서 보면 가관이라고 할 법 하지.
규모가 크든 작든 일반 회사도 다 마찬가지야. 어느 조직이든 승진하고 출세하려면 줄을 서야 되고 아부하고 충성맨이 돼야 하는 게 조직의 생리지. 입바른 소리 하고 토 달면 바로 찍혀서 변방으로 내몰리거나 자의반타의반 회사를 관둬야 하는 게 현실이야. 살아남으려면 몸 납작 수그리고 오너가 시키는대로 해야 자리보전 할 수 있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건 용납되지 않아. 그냥 무뇌아가 돼야 해. 참 서글픈 현실일세.
박근혜 정부의 부역자로 불리는 우리가 뭔 할 말이 있겠냐만 이제와서 이런 얘기 하면 돌 날아오겠지만 어릴 적부터 수재 소리 듣고 살았는데…. 미국, 영국 명문대 학위받고 고시도 척척 패스하고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는데 바보가 돼버렸어. 우리나라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이 문제야. 이 폐단이 고쳐지지 않으면 앞으로도 계속 이럴 건데 말이지. 상명하복이라는 군대문화가 잠재돼 있는 우리 사회에서는 제아무리 똑똑하고 잘난 사람도 관료가 되면 멍청이가 돼버린다니까.
사람의 욕망은 끝이 없어. 높은 자리 올라갈수록 불안감은 커지더라고. ‘내가 이 자리에 어떻게 올라왔는데 끝까지 지켜야 해’라는 심리겠지. 김언수의 소설 『뜨거운 피』에 이런 얘기가 있어. ‘욕심이 많으면 생각이 많아지고 생각이 많으면 겁이 많아진다’고. 맞는 말이지. 그리고 계급장 달면 그 사람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법. 아랫사람에게 갑질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깜짝 놀랄 때도 있었어. 박근혜의 딸랑이로 호가호위해서 부역자로 낙인 찍혔지만 물어보고 싶네. 당신들이 내 입장이 되면 과연 안 그런다고 장담할 수 있겠나?
우난순기자 rain41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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