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 새해를 밝히는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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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 새해를 밝히는 촛불

  • 승인 2017-01-08 11:24
  • 신문게재 2017-01-09 23면
  • 유낙준 모세 주교유낙준 모세 주교
▲ 유낙준 모세 주교, 성공회 대전교구장
▲ 유낙준 모세 주교, 성공회 대전교구장
추운 겨울 바람이 불어오는데도 작년 말부터 박근혜 대통령과 이와 연결된 권력자들의 부정부패로 어두워진 세상을 밝히려고 도심거리에서 끊이지 않고 촛불집회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어두운 길을 밝히고자 하는 것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의 방향을 정의롭게 하려는 촛불입니다. 그러한 마음으로 촛불을 켜들고 촛불이 하나둘 모여 수십명이 되고 수백명이 되고 수만명이 되고 수십만명이 되고 수백만명의 집단적 촛불이 되었습니다. 이는 집단지성이자 깨우치려는 양심의 소리가 되었습니다. 이 촛불은 한국 근대사 전체가 소수 권력자들의 물질 소유를 향한 욕망 추구의 역사였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부자가 되기 위해서는 양심 정도는 아주 쉽게 버리는 사회가 된 것을 이번 촛불로 인하여 다시금 확인하게 됩니다. 촛불로 인하여 내 안의 이기심과 양심없는 소유욕도 보게 되어 홀로 말없이 울었습니다. 그럼에도 촛불을 더 부여잡은 까닭은 내 안에 양심이 가득차고 내가 사는 이 땅에 양심을 넘치게 하여 자유와 정의의 나라가 되기 위함입니다.

어두운 세상은 앞이 보이지 않는 세상을 뜻합니다.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이지 않기 때문에 불안하고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어두운 곳에 빛이 비치면 빛으로 인하여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여 알게 돼 자신이 할 일을 알게 됩니다. 빛은 인간이 나아갈 방향과 자신이 할 일을 깨닫게 해 줍니다. 신이 하신 최초의 말씀이 “빛이 있으라(창세기1장 3절)” 입니다. 라틴어로 'lux룩스'를 '빛'이라 하는데 이 표현은 '생명'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습니다. 즉 '빛이 있으라'는 것은 곧 '생명이 있으라'는 뜻도 함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빛과 생명은 아주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혹은 제사를 지낼 때 제단에 촛불을 켜는 것은 어두운 세상에서 보다 나은 인간의 삶을 위한 예언적인 의지이자 선포입니다. 촛불은 기원이고 열망이고 기도입니다. 독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엉망진창인 이 세상에 반기를 드는 것이 기도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돈을 지옥의 성자가 되게 하는 어둠의 전략은 '인간은 이기심으로 인해 발전한다'는 논리를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촛불은 이러한 어둠의 전략을 일순간 사라지게 하는 힘을 가진 것입니다. 촛불은 인간이 이기심보다 더 귀한 보물인 이타성과 경이로움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보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인간의 이타성과 경이로움은 신이 주신 빛으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이타성과 경이로움은 바로 절망과 좌절에 빠진 아픈 사람들에게 생명으로 살게 하는 힘이니까요. 촛불은 자기 몸이 사라지면서 드러나는 밝힘입니다. 그러니 자기헌신적인 사랑이 빛을, 생명을 살게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촛불은 우리에게 생명으로 다가옵니다.

새해가 밝았는데 이 새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일자리를 오래동안 구하지 못한 사람에게 '더좀 기다려!'는 말은 위로가 되질 않습니다. 오랜 갈등으로 피폐해진 사람에게 '더좀 참아봐'라는 말은 마치 삶을 그만 끝내라는 의미로 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사회의 웅크린 작은 사람들에게 촛불을 건넵니다. 할 일은 많은데 용기가 바닥인 사람들에게 말없이 건내는 촛불에는 힘이 있습니다. 에너지가 방전되어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건네는 촛불은 힘이 됩니다. 촛불은 이 복잡하고 부산한 사회에 고요함을 주어 성찰하는 인간이 되고 온전함을 향해 생각하게 해 줍니다. 가슴으로 좀 더 깊이 말하고, 마음속까지 보고, 속 이야기를 듣고, 희망을 행동으로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촛불은 도반을 세우게 합니다. 구도의 벗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이루게 하는 힘이 바로 촛불입니다. 우리 모두가 촛불인 것을 오늘 보았습니다.

유낙준 모세 주교, 성공회 대전교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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